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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美에 "비행금지 설정" 호소…푸틴 "참전으로 여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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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키이우에서 연설하는 모습.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4일(현지시간) 배포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키이우에서 연설하는 모습.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4일(현지시간) 배포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국 상·하원 의원 수백 명 앞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고, 전투기 등 추가 무기를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등 대러 제재를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비행금지 구역을 시행하면 참전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미국 의원들과 1시간 넘게 비공개 '줌' 화상회의를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의원 30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전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280명으로 추산했다. 토요일인데도 전체 의원 54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참석한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의원들 앞에서 연설한 것은 처음이라고 NYT는 전했다.

군용 티셔츠 차림으로 우크라이나 내 모처에서 접속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살아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의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보냈으며, 일부 의원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란 뜻의 슬로건인 '슬라바우크레이니'(SlavaUkraini)'를 외쳤다고 CNN은 전했다.

젤렌스키 "비행금지 구역 설정" 호소에 美·나토 "안 돼"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앞서 지난 3일 전쟁 발발 후 연 첫 기자회견에서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향해 '노 플라이 존(No-fly Zone)' 설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충돌 위험을 언급하며 비행금지 구역 설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4일 기자회견에서 "비행금지 구역을 시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토 항공기를 우크라이나 영공에 보내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하는 것인데, 그건 유럽에서 본격적인 전쟁(a full-fledged war)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옌스스톨텐버그 나토 사무총장은 같은 날 브뤼셀에서 연 별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나토군 항공기,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나토군을 운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면서 "근본적인 긴장 고조, 오해 또는 계산 착오를 피하기 위해 외교와 충돌방지를 위한 경로를 열어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공을 닫거나 비행기를 달라" 

벤 새스 상원의원(공화당·네브래스카주)은 회의 직후 성명을 통해 "젤렌스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영공을 닫거나 우리에게 비행기를 달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젤렌스키는 추가로 항공기와 드론, 방공 미사일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민주당)는 성명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제 항공기를 공급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를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주 3억5000만 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무기 수송을 허가했다. 한 번에 해외에 지원하는 규모로는 최대라고 NYT는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주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인도적 지원을 위해 100억 달러(약 12조1700억원) 예산안을 요청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지원안을 신속히 승인하기 위해 자신과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간사가 초당적인 방식으로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 세계,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 금지를"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등 대러 제재 강화를 요청했다. 전 세계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하면 러시아 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댄 설리번 상원의원(공화당, 알래스카주)이 전했다.

백악관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를 포함해 "어떤 것도 논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 기름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 바이든 정부가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이든·젤렌스키, 30여분 통화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30여분간 통화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백악관은 자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침공으로 치러야 할 비용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동맹, 민간 기업이 취한 조처를 강조했다"면서 "두 정상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에 대해 논의했다"고 알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비자와 마스터카드 신용카드 회사가 러시아에서 영업을 중단한 것을 환영했다고 한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의원들과 통화에서 대러 경제 제재가 철저히 진행되려면 신용카드 회사들의 러시아 내 영업과 러시아에서 발급된 신용카드의 해외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 "제재는 선전포고…비행금지는 무력분쟁 개입"

이날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로 방영된 국영 항공사 여성 승무원들과 만남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서방의 대러) 제재는 선전포고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처음으로 공개 행사에서 한 발언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어떤 나라든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할 경우 러시아는 이를 "무력 분쟁 개입이자 러시아군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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