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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갈 때마다 눈물이 나는 까닭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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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20면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안타까운 죽음이 많아질수록 애도는 중요해진다. 잘 슬퍼해서, 뜻밖의 죽음과 잘 헤어지는 일 말이다. 잘 나가는 뮤지션이자 이 책 한 권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미셸 자우너가 선택한 방법은 엄마의 요리, 바로 한국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2014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엄마를 애도하는 방법 말이다. 대체 요리가 뭐길래. 음식은? 자우너는 이렇게 정의한다.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170쪽)

자우너의 얘기에 이런 말을 덧붙일 수도 있겠다. 죽음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간단하게, 죽지 않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책은 음식으로 커다란 슬픔을 이겨낸, 살아남은 딸의 회고담이다. 자우너는 그런 내용을 첫 문장에서 이렇게 예고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9쪽)

H마트는 한국 식재료는 없는 게 없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끔찍했던 엄마의 암 투병 과정은 얼마든지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H마트의 건조식품 코너에서 혹은 양손에 한국 주전부리인 뻥튀기를 든 낯선 아이를 마주쳤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크리넥스 소설’처럼 눈물을 쥐어짜지는 않는다. “엉엉 울게 될 줄 몰랐다”는 뉴욕타임스 리뷰에 동의하기 어렵다. 질퍽대기보다는 냉철하다고 느껴진다. 장면과 인물 내면에 대한 묘사가 명료하고, 글쓰기가 절제돼 있어선 것 같다. 그러면서도 미국 독자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을 법한, 다채로운 한국 음식 묘사가 풍성하다. 미국의 중산층 위기, 이민자 사회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어 근원적이다. 백인 아빠는 위태롭고, 자우너 자신은 정체성 혼란으로 고통받는다. 엄마는 냉탕 온탕을 오간다. 음식에 있어서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나머지는 억압적이다.

뮤지션 자우너는 싱거워서 유쾌해 보인다. 즉흥적으로 지은 밴드 이름이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몽환적인 슈게이징 스타일 음악을 한다고 해서 찾아보니, 관객과 소통 의지 없이 신발만 쳐다 보는 연주가 슈게이징(shoegazing)이다. 어깨 힘 뺀 뮤지션의 진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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