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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는 엉망이라도…자유가 승리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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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20면

미국인 이야기 1~3

미국인 이야기 1~3

미국인 이야기 1~3
로버트 미들코프 지음
이종인 옮김
사회평론

“실용적인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은 몽상가들의 주업이다. 그러나 벤자민 프랭클린은 아메리카의 다른 수백만 명과 함께 혁명가가 되었다.” 역사학자 로버트 미들코프가 이 책의 프롤로그에 쓴 말이다.

그는 식민지 시절의 미국인들에게 재산은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뜻하기도 했다는 점을 설명하며 이런 말도 썼다. “겉보기에 아메리카인들이 재산에 집착한 것, 특히 그 재산에 부과된 세금을 거부하기로 한 결정은 혁명을 일으킬 계기로는 사소하고 품위 없으며 부족해 보인다.”(1권 236쪽)

이런 표현들이 상기시키는 대로, 미국 독립은 처음부터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건 혁명은 아니었다. 영국 정부는 1764년 설탕법을 시작으로 식민지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일련의 법안이 장차 8년에 걸친 독립 전쟁,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앞서 신대륙에 공화제가 수립되는 결과로 이어질 줄 몰랐다.

1787년 9월 각 주에서 파견된 대표들이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이후 각 주의 비준과정이 이어졌다. [사진 사회평론]

1787년 9월 각 주에서 파견된 대표들이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이후 각 주의 비준과정이 이어졌다. [사진 사회평론]

식민지 사람들도 그랬다. 세금과 무역 규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한동안 유지했다. 왕위 세습이 자연법칙에 어긋난다며 군주제를 조롱한 토마스 페인의 저서 『상식』이 나와 큰 호응을 얻은 것은 1776년. 그 12년 전이라면 이 ‘상식’은 ‘몰상식’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라는 게 저자 미들코프의 설명이다.

이 책은 지난해 91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대표작이다. 한국판은 세 권으로 나뉘었는데, 본래 한 권으로 읽는 미국 독립 혁명사다. 1982년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나와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는 등 명성이 공인된 터. 놀랄 만큼 디테일이 풍부하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식민지에 새로 상비군을 두면서 그 비용을 식민지에 부담시키기로 한 1763년 전후의 영국, 그리고 식민지 내부의 정치·사회·사상적 흐름에서 시작해 교섭과 협상, 폭동과 전투가 숱하게 교차하는 역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1775년 렉싱턴 전투부터 1781년 요크타운 승리와 2년 뒤 평화조약에 이르는 전쟁사 역시 상세하다.

궁금한 것은 사실 개별 전투보다 미국의 승리 그 자체다. 강대국 영국이 지원군을 급파하기 힘든 상황이라곤 해도, 미국 역시 저마다 자치권을 누려온 13개 식민지가 두 차례 대륙회의에서 뜻을 모으는 것부터 지난한 과정이었다. 전쟁 비용을 대기도 쉽지 않았다. 공직을 맡으면 자기 잇속 챙기는 걸 당연시하던 시절이니 물자 조달도 문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은 영국군에 비해 전쟁 초기 훈련도, 기율도 형편없었다.

특히 대륙군의 상당수를 차지한 민병대는 군기 면에선 “통제불능”이었다. “민병대원들은 자신을 자유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짧게 복무했고, 마음 내킬 때 야영지를 떠났으며, 다른 이에게 지시받는 것을 꺼렸다. 특히 도망치지 말고 싸우라는 상관의 명령을 매우 경멸했다. 자유로운 사회에 속했던 민병대원들은 군대의 규율에 저항했다.”(3권 95쪽) 역설적으로 이런 민병대야말로 “독립의 이상과 목적을 가장 잘 실천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자유인이었던 이들은 ‘영광스러운 대의’를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목표가 분명했다. 그때까지의 전쟁이 왕조의 목적을 위한 전쟁, 충성심을 지닌 소수 귀족이 하층계급이나 용병을 가혹하게 훈련하고 군기를 주입했던 전쟁이었던 것과 달랐다. 기존 방식대로 구체제의 전쟁을 한 영국과 달리 미국은 새로운 전쟁을 했다. 저자는 이를 승리의 이유로도 꼽는다.

종전 후에도 13개 식민지가 뜻을 모으는 일은 험난했다. 연방헌법이 어렵게 제정됐지만 유권자는 여전히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으로 제한됐다. 전쟁 초기인 1776년 공표한 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문구는 흑인 노예에겐 소용없었다. 그래서 1776년 이후의 역사를 독립 혁명 정신에 위배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저자는 이를 “편협하고 어떤 면에서는 반역사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후대의 역사는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독립 혁명은 거의 30년 동안 발생한 사건들이 복잡하게 조합된 일련의 과정이기에, 실제로 벌어진 일들은 여러 단계를 거쳐왔다. 어떤 한 단계를 다른 단계보다 더 ‘혁명적’ 또는 더 ‘보수적’으로 추정하면 모든 단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3권 378쪽).

그 복잡다단한 전개는 지금의 시각에 맞춘 핵심 위주 요약정리 대신 이 책의 경우처럼 상세한 이야기로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일 수 있다. 원제는 ‘The Glorous Cause:The American Revolution:1763~1789’. 그 ‘영광스러운 대의’가 형성되고 체득된 과정이 이 책에 담긴 미국 독립 혁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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