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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3월 개교인데 건물 달랑 한채 "한전공대, 듣도 보도 못한 특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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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개교 두 달 앞둔 한전공대 논란

나주의 한전공대 공사현장. 3월 개교인데 건물 한 동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부영이 기증한 골프장 부지(40만㎡)에 2025년까지 캠퍼스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주의 한전공대 공사현장. 3월 개교인데 건물 한 동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부영이 기증한 골프장 부지(40만㎡)에 2025년까지 캠퍼스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KENTECH)가 3월 문을 연다. 그러나 직접 둘러본 한전공대 공사 현장의 모습은 개교를 두 달 앞둔 학교라고 보기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지난달 30일 오후 나주 혁신도시 빛가람동 일대의 옛 부영CC 자리엔 높은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교문 진출입로 공사를 위해 일부 개방돼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봤다. 40만㎡의 광활한 부지에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전면 유리의 통창 구조인데, 군데군데 유리가 끼워져 있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학사지원에 필요한 행정동 및 강의실로 쓰일 건물”이라며 “입학 후 다른 건물도 순차적으로 착공해 2025년까지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2022년 개교” 약속
2025년까지 캠퍼스는 공사판
부영 골프장 기증 후 급물살
아파트 개발 ‘이면 합의’ 의혹도

공사 현장으로부터 2.5㎞가량 떨어진 곳엔 임시 대학본부가 있다. 대형 빌딩의 5층 전체에 총장실과 교수연구실, 입학처 등이 입주해 있었다. 추가 사무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실내 공사 중인 곳도 보였다. 나주 혁신도시 개발 당시 계획 입안에 참여했던 조진상 동신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기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는 “이대로면 올 3월 개교하는 학교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건물 없이도 학교 설립 특혜

건물도 없는 상태에서 학교가 문을 여는 게 가능할까? 황인성 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듣도 보도 못한 특혜”라고 말한다. “대학 설립을 위해선 4대 요건(교지·교원·교사·수익용재산)이 필수인데, 한전공대는 교사(校舍)를 완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 처장은 “대통령 임기 안에 문을 열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전공대 설립일지

한전공대 설립일지

학교 설립비도 논란이다. 올해 교육부가 257개 대학에 지원하는 혁신지원사업 예산은 1조1970억원이다. 그런데 한전공대에는 2031년까지 투자비 1조471억원, 운영비 5641억원이 들어간다. 비용을 대야 할 한전의 부채비율은 2017년 149.1%에서 2024년 234.2%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지자체가 2000억원을 부담한다고 하지만, 전남의 재정자립도는 28.1%(2020년)로 최하위(전국 평균 50.4%)다. 지난해는 전기료의 3.7%를 떼어내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게 시행령까지 개정했다.

한전공대에 이 같은 특혜가 집중된 건 지난해 3월 제정된 ‘한전공대특별법’ 때문이다. 2021년 3월 23일 법사위 논의 당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입학하면 거의 공사판이다,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나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성윤모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임시 건물로 일단 개교하고, 완공되면 그 이후 사용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일반 교육법에 의하면 1년 전 모든 교원과 시설이 완비가 돼야 하지만, 특별법이 제정되면 개교 전까지 건물 등을 확보하면 된다”고 밝혔다.

한전공대 입지

한전공대 입지

국회 법안 검토보고서 역시 “설립 특례를 부여해 신속히 개교토록 하는 것이 특별법의 제정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특혜가 부여된 이유는 이낙연 전 총리의 말처럼 “(한전공대는) 저의 전남지사 공약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2021년 3월 24일)이었기 때문이다. 2018년 8월 국회에서도 그는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지역 숙원사업”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7년 4월 광주 충장로 유세에서 “세계 최고의 에너지 인재를 양성할 한전공대를 설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정권 출범 직후(2017년 7월) 한전공대 설립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고, 이듬해 범정부 한전공대설립지원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학 설립이 가시화 되자 광주·전남 6개 지역이 캠퍼스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최종 후보지가 광주 북구(첨단3지구)와 전남 나주시(부영CC) 2곳으로 압축됐고, 2019년 1월 나주가 선정됐다. 부지의 조건과 경제성, 지자체 지원계획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광주·전남의 치열한 유치 경쟁

당초 광주와 전남은 각각 “한전은 나주에, 한전공대는 광주에 있는 게 상생의 길”(이용섭 광주시장), “전남에는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이 필요하다”(김영록 전남지사)며 팽팽한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 전남의 결정적 한 방이 최종 부지 선정 직전에 나왔다. 2018년 12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나주의 부영 골프장 일부(75만㎡ 중 40만㎡)를 기증키로 한 것이다.

이후 한전공대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부지 선정 6개월 뒤(7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남도청을 방문해 “2022년 개교할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전남도 입장에선 결정타가 필요했고, 청와대 입장에선 임기 내 개교를 위해 사업 속도가 빠른 곳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조진상 교수도 “일반 토지를 매입해 캠퍼스 부지를 조성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반대로 부영 골프장은 이중근 회장만 승낙하면 한 번에 해결 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을 가장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부지 매입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순탄할 것만 같던 한전공대 이슈는 또 다른 갈등을 낳았다. 부영이 기부하고 남은 골프장 부지(35만㎡)에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다. 나주시에 따르면 부영은 2019년 12월과 2020년 4월 도시계획 변경 신청서를 접수했다. 자연녹지지역을 공동주택 부지로 용도 변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류지희 빛가람주민참여연대 사무처장의 이야기다.

잔여 부지의 아파트 개발을 예상 못했나.
“순수한 기부인 줄 알았고, 칭찬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지자체가 아파트 개발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기부한 게 사실이라면 주민들을 속인 것 아닌가. 2021년 1월 시민 600명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73%가 용도 변경이 부당하다고 답했다.”
골프장으로 못 쓰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 않았을까.
“이면 합의가 아니라면 잔여 부지를 개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연녹지를 일반주거 3종으로 무려 5단계나 상향 요구한 건 무리다. 이렇게 되면 부영의 기부 취지도 무색해지고 갑작스런 세대 수 증가로 혁신도시 인프라도 한계에 달한다.”

아파트 개발 특혜 의혹

광주경실련은 부영의 계획대로 35만㎡ 부지에 5383세대 아파트를 지을 경우 개발 이익이 1조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오주섭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평당 분양가를 1300만원으로 가정했을 경우”라며 “한전공대 옆 대단지 아파트라는 프리미엄과 혁신도시의 인프라를 누리는 최고의 입지란 점에서 수익은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나주시는 이를 반박했다. 나주시 도시과 양진우 주무관은 “30평형대 분양가를 3억원으로 보고, 5383세대를 곱하면 총매출액이 대강 1조6149억원”이라며 “아파트 건설사가 비용 등을 제하고 가져가는 이익이 15% 선인데, 부영의 경우 자기 땅에 짓는 것이니 20% 정도 수익을 적용하면 3229억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전남도와 나주시가 부영의 기부를 받기 위해 아파트 개발을 약속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전남도 국정감사에서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용도가 바뀌면 땅값만 10배 이상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며 “캠퍼스 부지를 기부하고 수천억원을 벌어들이면 특혜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면 계약’ 소문도 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3월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속기록에 따르면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기부가) 나머지 부지에 아파트를 짓도록 용도 변경을 해 주는 조건 아니었느냐”고 묻자 윤병태 전남 정무부지사는 “조건부로 기부가 이뤄진 것은 절대 아니다”며 “기부는 순수하게 대학 발전과 지역사회 인재 양성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불투명한 대응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2020년 1월 부영의 기부와 관련해 전남도와 나주시에 합의서 공개를 청구했는데, 이를 거부했다. 광주경실련은 같은 해 5월 3자간 합의서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진상 교수는 “떳떳하다면 굳이 합의서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