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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여 인사 강행 논란에 청와대 “단수 검증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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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선 앞둔 선관위, 조해주 상임위원 후임 구설수

지난 13일 과천 중앙선관위원회 청사에서 열린 2022년 대선·지방선거 상황실 개소식에서 노정희 위원장과 간부들이 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세환 사무총장, 노 위원장, 조해주 상임위원, 박찬진 사무차장. [연합뉴스]

지난 13일 과천 중앙선관위원회 청사에서 열린 2022년 대선·지방선거 상황실 개소식에서 노정희 위원장과 간부들이 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세환 사무총장, 노 위원장, 조해주 상임위원, 박찬진 사무차장. [연합뉴스]

잔여 임기가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청와대가 친여 성향 인사를 선관위 상임위원에 앉히고, 상임위원의 권한까지 확대하려다 논란이 일자 한발 물러섰다.

복수의 소식통은 28일 “청와대는 22일 오후 선관위에 ‘상임위원 후보를 단수로 검증하고 있지 않다. 연내에 후보를 발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같은 청와대의 입장 변화는 내년 1월 24일 퇴임할 조해주 상임위원 후임에 친여 성향의 윤석근 전 선관위 선거정책실장(56)을 단수 검증중인 사실이 중앙일보 보도(12월 22일자)로 알려지면서 ‘청와대가 작심하고 친여 인사를 상임위원에 밀어붙인다’는 논란이 야기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경찰이 윤 전 실장의 세평을 수집해 청와대에 보고한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윤석근 단수 검토’ 보도에 후폭풍
청와대 “연내 발표 못할 수도” 후퇴
“윤, 갑질논란 등 90%가 부정적 평”
상임위원 권한 확대 움직임도 우려

경찰은 지난주초 중앙 선관위 간부 3~4명 등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윤 전 실장의 선관위 재직 시절 행적을 탐문했는데 “90%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나왔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윤 전 실장은 재직 시절 ▶술집에서 부하 직원들과 회식한뒤 부하들이 술값을 치르도록 했고 ▶본인의 대학원 리포트와 논문을 부하들에게 쓰게했으며 ▶담배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서 돈을 주지 않아 부하들이 담뱃값을 내는 등 ‘갑질’을 했다는 지적이 상당수 나왔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렇게 평판이 좋지 않은 윤 전 실장의 상임위원 지명설이 돌면서 선관위 직원들이 불안해하며 동요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청와대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단수 검증 기조에서 후퇴한 듯하지만 28일 현재까지 후보 검증 절차인 정치 후원금 기부 내역 조회를  윤 전 실장 외에는 선관위에 요청하지 않아 다른 후보를 검토 중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땐 친박들에 인사청탁” 논란

윤석근

윤석근

또다른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윤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엔 친박 인사들을 대상으로 인사 청탁 로비를 한 의혹 때문에 좌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실장은 2013~15년 선관위 요직인 선거정책실장을 맡았다가 2016년초 대전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이동했다. 소식통들이 전하는 당시 정황은 이렇다.

“2015년 선관위 상임위원이 공석이 되자, 김용희 당시 사무총장이 후보에 도전했다. 선관위 안팎에서 김 총장을 미는 세력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친박 실세 의원들에게 연일 ‘김 총장을 밀어달라’고 청탁했다. 이에 친박들은 상임위원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에 김 총장을 임명하라고 부탁했다. 이런 전화가 어찌나 많이 걸려왔는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선관위 간부들에게 ‘무지막지한 로비를 받았다.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어찌 이럴 수 있나’고 힐난했다고 한다. 이런 로비를 한 세력 중에 윤 전 실장도 끼어있었다. 선관위와 친한 친박들이 이런 정황을 선관위에 알려주는 바람에 윤 전 실장은 로비 행적이 포착됐고, 이것이 좌천의 한 원인이 됐다. 눈에 띄는 건 윤 전 실장 등의 로비가 역효과를 불렀다는 거다. 당시 청와대는 김용희 총장을 검증한 끝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일찌감치 후보선상에서 제외했는데, 친박들을 앞세운 김 총장 측의 로비가 극성을 부리자 일부러 이 사실을 감춰, 선관위 사람들은 발표 당일까지 김 총장이 상임위원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윤 전 실장은 자신에게 제기된 부정적 평판과 의혹들에 대해 28일 "난 아무것도 모른다. 아직은 드릴 말이 없다. 노코멘트하겠다”고 했다.)

9명 중 친여권 선관위원이 7명

중앙 선관위는 임기 6년 장관급인 선관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이중 7명이 문재인 대통령·김명수 대법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이 임명한 친여 인사들로, 전원이 내년 3월 대선에서 자리를 유지한다. 선관위원중 비여권 인사는 1월 여야 합의로 선출된 중립 성향 조병현 위원 1명뿐이고, 야당 몫으로 임명되는 위원 1석은 공석이다. 2015년 11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몫으로 임명된 김태현 위원이 지난달 퇴임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후임자로 추천한 문상부 전 선관위 사무총장에 대해 민주당이 “장악력이 너무 센 사람”이라며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원 9명 명단

중앙선관위원 9명 명단

내년 3월 9일 이전까지 국민의힘 몫 선관위원이 임명되지 않으면, 내년 대선은 친여 위원 7명, 중립성향 1명으로 구성된 선관위가 관리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선관위원 9명 중 유일한 상근직으로, 위원장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진 상임위원(현 조해주)마저 또다시 친여 성향 인사를 후보로 검토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상임위원의 권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려를 더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가 선관위에 “상임위원 권한이 왜 이리 축소됐나”라고 추궁하며 상임위원의 권한을 정한 선관위 규정 자료를 받아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임위원 지명권 국회로 넘겨야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자신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씨의 상임위원 임명을 강행해 논란을 불렀다. 조 상임위원 부임뒤 치러진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선관위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이 비례자유한국당이란 당명 허가를 신청하자 “기성 정당과 헷갈린다”며 불허하는 등 여당에 편파적인 선거관리로 비난을 받았다. 지난 1월 민주당 추천으로 선출된 조성대 위원도 과거 대선과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당시 문재인·박원순 후보를 공개 지지한 이력이 드러나 야당의 반발을 샀다.  지난해 11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선관위원장에 임명된 노정희 대법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다만 “노 위원장은 당초 우려와 달리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사무처를 신뢰해 직원들도 위원장을 신뢰하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노 위원장은 청와대가 상임위원 권한 확대를 시도할 경우 선관위의 독립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선관위 전직 간부들은 “상임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라 성향이 친여권일 수 밖에 없는 데다 임기가 보장돼 권한을 오·남용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선거 관리와 인사는 사무처에 맡기고 상임위원은 감독만 하는 현행 원칙이 옳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는 윤 전 실장 대신 공정성이 검증된 인물로 상임위원을 임명해야 하며, 차제에 상임위원 지명권을 국회로 이관해 여야합의로 정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능환 전 위원장이 상임위원 권한 축소 주도

선관위 상임위원은 업무 결재권 없이 감독만 하는 게 원칙이다. 2011년~13년 재임했던 김능환 선관위원장이 선관위 내규(위임 전결 규정)을 바꾼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선관위 상임위원이었던 A씨가 시·도 선관위 상임위원 회의를 소집하며 상임위원 권한 확대를 추진하자 김 위원장은 “선관위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은 ‘위원장 지휘를 받아 선관위 업무를 감독’하는 자리일 뿐”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어 간부들의 동의하에 상임위원을 계선(결재라인)에서 배제하는 골자로 위임 전결 규정을 개정해버렸다.

이에 따라 상임위원은 결재권이 없어졌고, 사무처 결정에 의견을 표할 권한만 남았다. 소식통은 “선관위법의 취지를 잘 반영한 이 규정 덕분에 친여 성향인 조해주 상임위원조차 여권이 기대한만큼 여권에 편향적인 조치를 끌어내지 못했다”며 “때문에 청와대는 조 상임위원 후임자에겐 결재권을 줘야 선관위 결정이 여권에 유리하게 내려질 것으로 보고, 권한 확대를 추진하는 듯하다”고 했다.

10년 전 상임위원의 결재권 박탈은 당시 민주당에 이로운 결정이었다. 당시 상임위원 권한을 확대하려 한 A 상임위원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인사였다. 따라서 그의 권한이 확대되면 선관위는 당시 여당(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편파적인 결정을 내리게 될 공산이 컸는데, 김능환 위원장이 위임 전결 규정을 바꿔 그럴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선관위 소식통은 “상임위원의 권한 축소는 민주당 사람들이 야당 시절 좋아한 사안인데 정권을 잡은 지금은 ‘상임위원의 권한이 왜 이리 줄어들었나’고 선관위를 추궁하며 위임 전결 조항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