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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나토 동진 용납 못해...유럽 가스위기, 러시아 탓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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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 유럽 등 서방국과 극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연례 기자회견을 통해 “캐나다나 멕시코에 우리가 로켓을 전달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라며 “나토 동진(東進)을 용납할 수 없고, 러시아의 안보 보장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마네주에서 5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과 대면한 연례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마네주에서 5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과 대면한 연례 기자회견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수도 모스크바에서 내‧외신 기자 507명이 모인 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회견은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러시아군이 증강되고 최근 러시아가 유럽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관의 일부를 사흘째 전격 차단하는 긴장 상황 속에 이뤄졌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는 과거 러시아의 땅이었던 곳이 구소련 체제 하에서 우크라이나의 땅이 된 것뿐”이라며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겨왔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시도에 대해 러시아가 개입하고 반대할 지분이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바 있다.

최근의 군사 긴장과 관련해서도 “우크라이나가 동부에서 군사작전을 준비한다는 것 같다. 공은 서방에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시각에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며 “내년에 협상을 시작하는데, 상황이 나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전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미국과 나토 측에 요구한 안보 보장 문제 논의를 위한 첫 협상이 다음 달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22일 자국 관영 RT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1월 초 러시아와 미국 대표 간에 양자 협상을 개최하기로 합의했고, 바로 이어서 러시아와 나토 회원국 간 (안보 보장) 협정안에 대한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라 밝혔다.

푸틴은 지난 21일 국방부 확대 간부회의에서 “서방 동료들의 공격적 노선이 지속되면 적절한 군사·기술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군사적 조치를 시사한 바 있다.

총 잡은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1일 국방위원회 확대간부회의를 마치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군수 전시회에 방문해 무기를 살펴보고 있다. [AP=뉴시스]

총 잡은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1일 국방위원회 확대간부회의를 마치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군수 전시회에 방문해 무기를 살펴보고 있다. [AP=뉴시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을 끊었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그는 “우리는 유럽에서의 천연가스 가격 상승과 관련이 없다”며 “유럽은 최근 짧은 계약을 해왔다. 안정적인 공급을 받고 싶다면 장기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야말-유럽 가스관’ 수송물량 경매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사흘째 폴란드에서 독일로 가는 가스 흐름이 중단된 상황이다. 난방 수요가 치솟는 겨울철을 맞은 유럽은 지난 21일부터 러시아 가스의 유럽 수출을 위한 주요 수송로 중 하나인 야말∼유럽 가스관이 막히며 비상이 걸렸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알렉세이 나발니를 비롯한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선 “나는 여러 차례 그런 주장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지만 그런 증거는 전혀 없었다”고 일축했다.

러시아-유럽 잇는 가스관 루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러시아-유럽 잇는 가스관 루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과 관계에 대해선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으며 양국의 협력은 국제무대에서 안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내년 2월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국가에 대해선 “중국의 발전을 제한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는 내년 올림픽에 참석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1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회담에서 거듭 확인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와 국가 통합 논의와 관련한 질문에는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과 회담에 진전이 있다”면서도 “우리는 통합된 국가를 논의하고 있지만, 그 수준은 유럽연합(EU)에 비해서 낮은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취임 이래 임기 중간 총리로 재직했던 시절을 제외하곤 매년 연례 회견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탓에 화상으로 이뤄졌지만, 올해는 대면으로 진행됐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대면 회견을 요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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