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수능 치른 아이보다 더 큰 상실감 느끼는 부모에게

중앙일보

입력 2021.12.02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92)

산수유 꽃은 거의 한 달가량 가지 끝에 매달려 있고 그 꽃말도 지속(持續)이다. 변화하면서 오랫동안 성장한다는 의미다. [사진 pixabay]

산수유 꽃은 거의 한 달가량 가지 끝에 매달려 있고 그 꽃말도 지속(持續)이다. 변화하면서 오랫동안 성장한다는 의미다. [사진 pixabay]

두 번 꽃을 피우는 나무

호기심과 하고픈 일이 키우는 아이들
그 마음이 움츠러들면
온 나라가 수능 추위 맞아 으스스 떤다

노란 산수유는
삭정이 같은 마른 가지 끝에
지난 한파를 길어 올려
꽃을 두 번 피운다
연녹색 잎사귀가 봄을 간질이기 전
새초롬한 입말을 속삭이며
자디잔 겉꽃을 툭하니 낸다
아직은 사랑이란 열정이 설어
벌과 나비 불러 모으기를
한 뼘의 그리움으로 삭인다
한 밤 두 밤 까만 밤 더 기다려
속정 깊은 속꽃이 별꽃처럼 터진다

하나 되기 애썼던 작은 겉꽃
그 앞선 마음이 터지고 나야
속 꽃잎 수십 장이 서로 다름을 뽐낸다

아이들은 빈 오선지 악보
같음을 찾기보다 차이를 연주하는
산수유 피는 봄날이기를

해설
매년 11월이 되면 온 나라가 수능에 관한 뉴스로 파묻힌다. 대표적인 뉴스 제목이 수능 한파이다. 이상하게 그날이 되면 평소 따뜻했던 날씨도 갑자기 추워지는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 떨어진다.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인구가 많아 마치 자기가 수능 시험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껴서 그럴 것이다. 시험을 봤던 고된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유독 우리나라 시험이란 것이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낳는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 등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하루에 치른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는 방법은 한 번도 바뀌질 않았다.

수능과 같이 중요하고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나면 우울감이나 무력감이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상하게 당사자보다 부모들 중에서 더 심한 증상을 호소하곤 한다. 막연한 기대가 아무 성과 없이 끝났을 때 느끼는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자기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의미의 상실이 주는 무력감은 깊고 진하다.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위로를 받아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여의거나 이별,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일을 실패했을 때 받은 상처는 슬픔이기에 위로가 가능하다. 그러나 무력감은 그 감정이 약간 다르다. 슬픔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의미의 상실이다. 그런 때에는 위로보다 격려가 필요하다. 시험 당사자라면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지만, 의미를 잃은 부모에게 어떻게 위로나 격려의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위로의 말은 방법이 많다. 같이 공감해주고 동참해주는 것이다. 특히 상대방과 비슷한 경험을 나누며 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내는 게 지름길이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격려는 상대방이 어떤 면에서 부족했고 어떤 점은 좋았는지 분석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해주어야 효과가 난다. 그런데 무력감을 느끼는 학부모에게 잘잘못을 어떻게 따져볼 수 있겠는가. 개선할 점과 앞으로 나아갈 목표를 무슨 수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위로도 어렵지만, 격려는 더 힘들다. 세심하며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의원에서 진료 중에 시험에 실패한 수험생과 그 부모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점은 위로와 격려를 동시에 분명하고 적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료를 왔던 수험생과 그 부모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와 상황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면담할 때는 적절한 비유와 시, 글을 통해서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아니면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한 번 보라고 소개해주는 방법도 좋다. 나는 이때 산수유 꽃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수유나무는 특이하게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그렇기에 봄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추위가 채 가시기 전 3월 초 무렵, 아직 잎이 나지 않아 앙상한 가지 위에 불현듯 작은 꽃이 돋는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식물은 대개 꽃이 잘다. 하도 일찍 피고 꽃도 잘아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지 못한다. 그래서 수분을 하는 벌과 나비를 모으기 위해 두 번째 꽃을 피워야만 했다. 노란 겉꽃이 먼저 피고 그 안에서 속꽃이 수십 장 뭉텅이로 다시 벌어지며 개화한다. 누구는 이런 광경을 두고 하나의 막대사탕에서 풍성한 솜사탕으로 변했다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또 까만 밤에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산수유 꽃은 거의 한 달가량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꽃말도 지속(持續)이다. 변화하면서 오랫동안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꽃이 피는 목적이 무엇인가. 자손을 번식시키고자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피면 꽃이 잘아진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인생도 비슷하다. 너무 일찍 개화하면 자칫 그 크기가 작아질 수 있다. 한두 번의 실패가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도리어 더 크게 될 기회가 올 수 있다.

수능 뒤에도 수많은 인생의 단계가 남아있으며 삶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단기준이 아니다. 시험은 나름의 개성을 완성하는 과정일 뿐이다. [사진 pixabay]

수능 뒤에도 수많은 인생의 단계가 남아있으며 삶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단기준이 아니다. 시험은 나름의 개성을 완성하는 과정일 뿐이다. [사진 pixabay]

어찌 보면 모든 건 두서너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 사랑도 그렇다. 첫눈에 반해 열정을 불태우다가 서로 떨어져서 못사는 시기가 있다. 동질감을 찾는 시기이다. 그때는 하나 됨의 환상이 지배한다. 그러다가 열정이 차차 식을 즈음 사랑은 다른 단계로 넘어 간다. 두 번째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바로 친밀함의 꽃이다. 함께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지낼 때 다닥다닥 피어나는 건 정이다. 이때 필요한 건 이해와 배려이며 차이의 존중이다. 산수유처럼 하나의 꽃에서 수십 개의 꽃잎이 터져 나올 때와 비슷하다. 그러나 모양은 엄연히 처음과 다른 꽃으로 나온다. 산수유 꽃이 개화하는 장면을 보면 이해가 쉽다. 정말 하나의 막대사탕에서 여러 개의 솜사탕이 나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르는 수능은 비슷한 교육을 통한 동질의 사고를 측정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달라지기 위해 앞으로 수많은 단계가 더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생 전반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단기준이 아니다. 그래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만족해서도 안 되며 재수, 삼수의 기회를 더 가져야 한다고 낙심해도 어리석다.

시험이 자기 나름의 개성을 완성하는 과정인 점을 이해하고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는 게 더 낫다. 너무 큰 성공은 도리어 해롭다. 큰 복권에 당첨된 사람치고 제대로 살고 성공하는 사람이 드문 경우와 같다. 난관에 부닥쳐 지치고 힘이 들 땐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는 도구를 가져야 한다. 저렴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수다를 떤다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실행하는 것 등 만족감을 주어 고갈된 생체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우울할 때는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설거지나 방청소, 동네 한 바퀴 돌기 등으로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게 최선이다. 정신적 피로는 항상 몸을 움직여 푸는 게 효과적이다. 큰 결심과 계획이 필요한 헬스클럽 등록, 집안 대청소, 모임 나가기, 학원 다니기 등은 효과가 더디다. 바로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평소에 마련해 두자. 게임이나 도박 등 시간과 돈을 잡아먹는 것은 에너지 충전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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