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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김한길·김병준vs김종인·이준석…이 구도에 얽힌 사연

중앙일보

입력

# 18일 낮 12시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 윤석열 대선 후보가 오찬장소로 떠나자, 남겨진 이양수 수석대변인에게 기자들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김한길·김병준 두 분과 악연이 있어 윤 후보가 영입하려는 걸 비토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이 수석대변인은 “정치인은 구원(舊怨)이 있더라도 큰 일을 치르는 데 도움이 될지를 중요하게 본다”며 단서를 하나 달았다. “다만 과거에 굉장히 안 좋았고 지금도 서로 잘 안 맞는 그런 경우만 빼고요.”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TBS 라디오에 나와 선대위 인선안을 둘러싼 갈등 배경에 대해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종인·김병준’ 사이를 거론하면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종인 당시 위원장에게 굉장히 세게 들이받은 인터뷰를 했는데, 개인이 노력해서 풀어야 될 부분이다. 이건 제가 나서서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당사자들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지금 국민의힘 선대위 인선을 둘러싼 지형은 ‘윤석열·김한길·김병준 vs 김종인·이준석’의 갈등 구도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각자 얽히고 설킨 과거 인연과 악연이 작용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전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한길 국민통합위’를 두고 “그런 짓은 빈축만 산다”고 반대했고, 이 대표도 “선대위가 반문 집합소가 되면 참패한다”고 거들었다.

그런데도 윤 후보가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를 중용하려는 까닭은 뭘까. 윤 후보와 오래전부터 가까웠다는 인사는 통화에서 “윤 후보 신조가 ‘어려울 때 돕는 게 진짜 동지’란 거다. 김 전 대표가 딱 그렇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게 윤 후보를 도우며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전했다.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와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주지청장이었던 윤 후보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사건 수사와 관련한 외압을 폭로했는데 당시 민주당(제1야당) 대표가 김 전 대표였다. 이후 김 전 대표는 공개발언 등을 통해 ‘윤석열 지킴이’를 자처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이어왔다. 윤 후보 측은 “후보가 정치권에 들어온 지 5개월 만에 압축 성장하는 데는 김 전 대표의 조언이 컸다”며 “TV 경선 토론을 할 때도 ‘이렇게 교정했으면 좋겠다’며 주옥같은 조언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윤 후보 측은 민주당 출신 반문 인사인 김 전 대표가 국민통합위를 이끌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를 망설이는 탈진보까지 아우르는 ‘반문 빅텐트’ 성격의 진용이 구축되는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2006년 8월 1일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6년 8월 1일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병준 전 위원장도 윤 후보와 사적으로 가깝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 '친노 반문' 인사다. 윤 후보 측은 통화에서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두 사람은 사적 친분 정도가 상당히 깊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 입당 열흘 전인 지난 7월 김병준 전 위원장 집을 찾았는데, 어찌나 장단이 잘 맞는지 자정을 넘기며 와인을 여러 병 비웠다. 이후 경선 과정에서도 자주 소통했다”는 것이다.

윤 후보는 후보 선출 직후인 11월 7일에도 만찬 회동을 했다. 선대위 구성에 대해 잘 아는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후보는 김병준 전 위원장에게 상임선대위원장을 앉히고 싶어하는데 반해, 김종인 전 위원장은 선대위 외부조직인 미래비전위원장 쪽에 무게를 둬 다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윤 후보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원톱으로 이끌 선대위 외에 국민통합위와 미래비전위 등을 따로 두고, 또 둘(김한길·김병준)을 중용하려는 걸 두고는 “업무 분산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대선 기간 중 힘이 어느 한 명에게 급격히 쏠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김병준 세종시당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김병준 세종시당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반면 김종인 전 위원장은 두 사람과는 껄끄러운 관계다. 김한길 전 대표와는 2016년 대선 때 야권통합 논의 과정에서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전 위원장이 야권 통합을 주장하자,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었던 김한길 전 대표는 “진정성과 절박성을 가진 정중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등 한동안 시끄러웠다.

일각에선 김 전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정치 행보를 함께 한 이력이 영입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김종인·이준석’은 안 대표와 앙숙 사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한길 전 대표와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및 탈당을 함께 하고 직전 대선 때도 김 전 대표가 안철수 캠프 상임선대위원장을 했다”며 “이번에도 김 전 대표가 ‘윤석열-안철수’간 후보 단일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란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전직 비대위원장인 ‘김종인-김병준’ 관계도 서먹하긴 마찬가지다. 둘은 최근까지도 서로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4·7 재보선 직후 퇴진한 김종인 전 위원장이 당 중진들의 당권 경쟁을 가리켜 “아사리판”이라고 하자, 김병준 전 위원장은 “어린애 같다”고 공격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윤 후보가 뇌물을 받은 전과자와 손을 잡을 리 없다”(김병준), “하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김종인)이라는 등 감정 섞인 공방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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