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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개각, 나라 안위가 걱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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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일 단행한 외교안보 라인의 개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 보유국으로 대접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역내 국가들의 핵 도미노나 군비경쟁에 불을 붙일 위험을 안고 있다. 북.미 간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는 했으나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우리는 북한 핵무기의 볼모로 잡혀 있다. 어정쩡하고 혼란스러운 외교적 태도로 동맹관계는 비틀거리고, 우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정작 우리는 들러리조차 서지 못하는 처지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우산으로 남한을 보호한다고 헛소리를 하는데 남쪽의 위정자는 "북한의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권력의 핵심부에 북한의 간첩이 휘젓고 다니고, 세습왕조에 충성을 맹세하는 글이 인터넷에 버젓이 나돌아다녀도 정보기관의 장이 이들을 잡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이 오히려 큰소리치고, 수사하려는 자를 공격하는 실정이다.

이 누란지위(累卵之危)에 안보체계를 다져야 할 개각은 완전히 거꾸로다. 포용정책의 강화란 이름으로 이런 기막힌 현실을 더욱 강화.발전시키겠다는 게 개각에 담긴 뜻이다. 이런 메시지를 우리 국민과 우방, 그리고 북한 정권에 보내 무엇을 도모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국정원장이다. 지금 수사 중인 '일심회' 간첩단 사건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김승규 원장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김만복 원장 후보자를 "코드를 맞출 우려가 있다"며 부적격 인물로 지목했다. 두 사람은 이번 간첩단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도 마찰을 빚어왔다고 한다. 그러니 간첩 수사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뻔한 일이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으로서 외교.안보 정책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최근에는 미국을 "인류역사상 가장 전쟁을 많이 한 나라"라고 표현해 미국의 조야에 경계 대상이 된 인물이다. 그런 인사가 가뜩이나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미 동맹 관계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전임 이종석 장관 못지않은 대북 유화론자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징후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의 예를 볼 때 2차 핵실험은 필연이니 확대해석하면 안 된다"는 사람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는 마당에 이런 터무니없는 낙관론이 대북정책을 어디로 끌고 갈지 기가 막힌다. 더군다나 그는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사면.복권됐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비슷하다.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된 사람을 임기 중에 사면하는 것도 문제인데 줄줄이 장관직을 선물하니 나라의 기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개각 발표 하루 전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원내대표는 "안보.경제 위기 관리 내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드 인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자 청와대는 바로 비공식으로 명단을 공개해버렸다. 당의 의견마저 무시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판국에 열린우리당도 말로만 차별을 강조할 게 아니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치열하게 따져주기 바란다. 입에 발린 말만 던져놓고 꼬리를 내려서는 국민이 속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