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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은 뒷전”이라크 철권정치/바트당 1당독재 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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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쌓인 불만… 후세인정권 취약점/전쟁에 지치고 감시당하는 체제에 불안/실업자는 느는데 권력자는 화려한 생활
세계를 전쟁과 석유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장본인으로 서방들이 맹공격하고 있는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위기를 맞은 이라크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그다드 시내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그들의 「후세인만세」구호와는 달리 두려움과 의심으로 후세인을 「외경」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지난 79년 집권과 거의 같은 때인 80년 대 이란 8년전쟁을 시작,국민을 전화속에 몰아넣은 채 「위기조성」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후세인의 통치술은 그의 일생을 통한 혁명아적 기질과 집권후의 강압적인 탄압,그리고 이같은 철혈정치를 통한 개인숭배화로 이어지고 있다.
후세인의 권력은 군부와 군부위에 위치한 집권 바트당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바트당은 선진제국주의 국가들에 일방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아랍국가들을 준식민상태에서 부활시키고 왕족이나 일부 특권층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부를 전체 민중에게 고루 분배,국가전체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바트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다.
바트사회주의(바티즘)는 모든 종교인과 모든 인종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단일아랍국가의 결성을 촉구,초기에는 많은 아랍국가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영원한 메시지를 지닌 단일 아랍국가」는 바트당이 초기에 내건 슬로건이다.
그러나 바티즘은 사실상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를 교묘하게 결합시킨 신사회주의라는 것이 정평이다.
모든 국민들은 스탈린시대의 소련처럼 철저하게 자기의 생각을 숨기고 국가와 바트당이 요구하는 이념과 생활태도를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견이나 반대는 결코 허락되지 않으며 소극적인 태도조차 회의나 불만,나아가 국가와 당에 대한 반역으로까지 간주되기 일쑤다.
바트당조직은 사생활에까지 깊숙히 침투,개인의 생활까지 간섭하고 모든 것을 당에 보고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조직원 사이의 상호감시와 보고는 물론 친구와 친척,심지어는 부부사이와 부모자식간에도 보고와 감시의무는 예외없이 부과된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부모의 발언내용과 행동을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서까지 자기생각을 감춰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라크국민들은 무카바라트를 두려워한다. 무카바라트는 바트당의 산하비밀경찰조직으로 이라크국민들에게는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존재다.
무카바라트는 「전국민의 정보원화」를 추진,현재 시민제보와 감시가 무카바라트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후세인은 지난 79년 집권하면서 대대적인 정풍운동을 전개,수많은 반대자들을 숙청했다.
이와 함께 후세인 개인에 대한 개인숭배운동이 급격히 강화되기 시작했다.
약 2백여곡의 사담찬가가 제작되고 거리 곳곳에는 후세인의 대형초상화가 나붙었다.
부모들은 아이들 이름을 후세인의 이름을 따 사담이라고 지었고 젊은이들은 후세인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란은 대 이라크 8년전쟁기간 계속 후세인 퇴진을 요구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후세인의 개인숭배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후세인의 생일은 국경일로 선포됐으며 지난 82년에는 국회의원 전원이 혈서로 후세인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기까지 했다.
최근 완공된 새국제공항도 후세인의 이름을 따 사담국제공항이라고 명명됐다.
이라크 바트당의 20년 통치는 결국 심한 빈부격차와 철저한 군관우위사회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를 불신과 미몽으로 몰아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라크 정부 고위관리의 집무실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30평 남짓한 대형 집무실 안쪽에는 침실과 주방ㆍ식당ㆍ목욕탕 등이 자리잡고 있다.집무실을 나서면 보안을 담당하는 측근비서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고 이 비서실 밖에는 일반행정업무와 손님접대를 담당하는 비서실이 하나 더 마련돼 있다.
이 두번째 비서실을 나서야 비로소 일반통로로 나서게 된다.
사무실 집기와 사무용품들은 모두 최고급 제품들이며 집무실 장식도 수준급이다.
거리에서 좋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절반정도가 군복을 입은 군인이며 나머지는 공무원이거나 극소수의 부유층이라고 생각하면 대개 틀림이 없을 정도다.
일반행정업무는 물론 비행기 예약이나 물품구입등의 사소한 일에 있어서조차 일반인들에게는 까다로운 절차와 긴 기다림이 요구되지만 정부관리가 개입하면 모든 일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것이 보편화돼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일반국민들의 생활은 점차 쪼들려가고 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시의 중심가인 만수르가나 알 사둔가를 조금만 벗어나기만해도 일반국민들의 찌든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란과의 전쟁당시 파괴된 건물들은 보기 흉한 모습으로 그대로 방치돼 있고 거리마다 초라한 옷차림의 실업자들이 몰려있다.
빵가게앞에는 빵배급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30m정도의 긴 행렬을 이루고 있고 그 옆에는 적선을 바라는 거지들이 앉아 있다.
다민족국가인 이라크는 언제라도 밑으로부터 불만이 분출할 위험성을 갖고 있는 만큼 후세인은 강력한 군대와 비밀경찰ㆍ공무원을 동원,국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엄청난 전비를 소모하고 이번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해 경제제재조치를 당하고 있는 후세인으로서는 권력유지의 근간인 이들 핵심세력들에 대한 처우가 큰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급할 돈은 계속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배계층내에서도 정권전복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어 후세인을 한층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석유를 믿고 쿠웨이트침공이라는 대도박을 단행한 후세인이 안팎으로 죄어들어오는 위협을 그의 특유의 「살아남기전술」로 극복할지가 주목된다.<진세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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