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오묘한 산심 담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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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안승일씨(44)는 산을 좋아하다 못해 거기 아주 미쳐버린 사람이다. 사진은 또 안 그런가. 사진에 미치기로도 산에 더하고 덜 할 것이 없다.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고를 수 없는 처지인즉 그는 아예 산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로 아퀴를 짓고 산다.
그 미침(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세상에 둘도 없어야 할 마누라·자식까지 뒷전에 밀어놓는 터다. 한 달에 제 식구 얼굴 대하는 날은 열흘인데 밖으로 헤매며 산 사진 찍는 날은 스무날이다.
산 사진에 미쳐온 역년이 25년. 전국 어느 산 하나 그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은 산이란 없다. 산이 수백이요, 산에 버금하게 닮은 큰 언덕(구)이 또 수천이라지만 그 가운데서도 유독 그의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산이 있다.
북한산. 서울 북쪽 외곽에 병풍처럼 솟아있는 산이다. 옛날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는 길에 양주 목쯤서 바라보면 백운·만경·인수 세 봉우리가 세모꼴로 우뚝 눈에 든다 해서 흔히 삼각산이라고도 불렀다.
화강의 흰 벽암, 트인 능선, 울창한 숲과 그사이로 갈래져 내린 녹수의 계곡, 산으론 무엇하나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 복 받았다는건 어느 끝에서도 버스표 한두 장이면 닿게되는 지척에 이 산을 두고 있음이 한 큰 이유일 터인데 눈만 들면 밟히는 탓에 무심히 버리고 홀대함이 또한 자심한 것이 현실이다.
안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삼각산이 사람들의 일상성 속으로 매몰돼 가는걸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던 것인데 그래서 중학생 때 소풍가서 처음 만난 이 산을 20여년간이나 들며(입) 나며(출) 열심히 사진 속에 담았고 이제 그 정수로 골라낸 88점의 작품으로『삼각산』이란 사진집을 펴냈다.
『내 사진은 삼각산의 일부이고 이 사진 집은 그 사진들의 일부입니다. 책이라는 한정된 틀 속에 넣어진 이 사진들이 삼각산의 분위기를 얼마만큼이나 전달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작업에는 위대한 자연의 순간적이고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영상화하려는 나의 마음이 담겨겨 있습니다.』
이렇듯 머릿글에서 밝힌 심미적 동기는 제쳐 두고라도 그는 이번의 사진집 출간이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천대받고 날파 당하는 삼각산을 제 모습으로 되돌려 보겠다는 그의 의지로 읽혀지기를 바란다.
그가 산에 집착하기 시작한데는 조금은 눈물겨운 사연이 깃들여있다. 스스로 캐려고 한 일이 없어 지금도 원인은 알지 못하지만 그는 왼쪽다리가 짧고 가는 절름발이다.
위로 치켜 올라간 산길은 그 파행을 감춰주었다. 그는 성한 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산을 탔고 그 재미로 산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삼각산이었는데 그 무렵 외삼촌이 팩스M3 사진기를 사다주었다.
그 사진기가 산 오르기에만 급급하던 그에게 산을 예술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감성과 여유를 주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산으로만 돌며 사진을 찍던 그는 65년 건국대 농대 원예학과에 들어갔다 재미가 없었다. 2년만에 그만두고 두어해 놀다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전공해볼 셈으로 69년 서라벌 예술대학 사진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해 그는 새한 칼라 상설 전시관에서 첫 사진전을 가졌는데 작가 소리를 들어도 그다지 거리낄게 없다고 믿고있던 그에게 카메라 드는 법을 교수하는데 두서너 시간, 손바닥만한 인화지 한 장씩을 나눠주고 꾸려 가는 실습시간이 한심해서 또 학업을 도중하차했다.
산 사진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만 해도 그는 북한산이 피사의 대상으로는 너무 왜소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부득부득 한라산이니 설악만 찾아다녔다.
『67년 여름의 일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설악산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팔당을 지나다가 우연히 차창너머로 비쳐드는 삼각산을 보았습니다. 정말 놀랐지요.
그 먼데서도 삼각산이 보이다니…. 삼각산 쪽으로 해가 지는 하지 때만 골라 그곳에 가 기다리기 장장 8년만에 붉은 노을 속에 검은 실루엣으로 잠기는 원경의 삼각산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팔당에서의 사진은 그가 오래 잊고 있던 삼각산과의 운명적 재회였으며 산 사진 작가로서의 그의 개인사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후 그는 용문산·혜음령·문산·파주·교하·강화 등 삼각산이 보일만한 곳은 어디고 갔다. 멀리서 찍을수록 삼각산은 작아지고 대신 현란한 빛을 머금은 하늘이며 구름덩어리들이 주인공처럼 커졌다. 삼각산을 될수록 왜화시켜 오로지 이미지로 그 존재를 강조하는 일종의 반어적 문법이다.
대개 열흘단위로 산 촬영에 나서는 그는 10년 전 가을 설악산에서 원하는 풍경을 찍을 때와 장소를 골라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아버지의 회갑연마저 놓친 불효의 경험을 갖고 있다. 사진 작가로서의 그의 집념이 그만하면 마땅히 칭도 될 법한데 그는 고개를 흔든다.
『이웃 일본의 어느 작가는 히말라야 항공촬영 허가를 얻기 위해 관계기관에 3천장의 문서를 들이밀었고 허가가 떨어지자 경비행기로 1천시간을 떠서 사진을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멀었어요.』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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