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민족교류가 두려운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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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제안한 「민족대교류」나 전민련이 발의하고 북한이 주도해온 범민족대회가 모두 무위로 끝나고 있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통일문제에 대해 또한번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국민의 절대다수가 열망하고 있는 통일문제가 이 모양으로 한껏 기대만 부풀게 해놓고 실망만 안겨주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이 좌절을 극복하고 평화공존의 세계적 대세에 따라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처음부터 되돌아가 다시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를 느낀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개탄하는 바는 북한당국의 일관된 전술ㆍ전략이다. 입으로는 항상 자기들이 통일을 가장 열망하고 있는 듯이 떠들어대면서 행동으로는 통일은 고사하고 그 전제가 되는 신뢰구축 노력에 대해서까지 이율배반된 저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6ㆍ25를 일으켜 민족상잔의 비극을 몰고 왔고 무장공비의 남파와 아웅산 테러ㆍKAL기 폭파 등 갖은 적대행위를 해온 북한당국은 냉전체제가 붕괴된 지금도 남한을 공존과 화합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전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이번 과정을 통해 다시 확인되었다.
7ㆍ7선언이래 북한당국은 남북교류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남한정부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우리 사회내의 재야세력과의 연대만을 시도해왔다.
이번 경우도 백보를 양보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의도적으로 퇴색시키려는 시도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예비회담때는 북측 대표들의 신변보호와 안내를 정부가 맡겠다는 당연한 제의를 빌미로 회담 자체를 거부했으며 민족대교류 기간중 우리 국민이 북한을 방문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신변보장과 명단수교등 절차문제에 있어서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 행정권까지 부인하려 했다.
그와같은 태도는 첫째,동구에서 목격한 반공산혁명이 북한의 유일체제에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한 개방공포증과 둘째,남한의 재야세력과 정부를 이간시켜 그들의 혁명전략을 시도해보려는 두가지 저의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당국자들의 그와같은 저의가 오히려 그들이 의도하는 바와는 반대로 작용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혁명전략이 노골화되면 될수록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그들이 의도하고 있는 듯한 중국식 개방모델조차도 실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북한당국자들은 그들이 노리고 있는 2중전략이 전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며 허황된 가설을 바탕으로 할 때 그들이 타개하려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도 없음을 깨달아야 될 것이다.
이번 실패의 과정은 우리에게 또한 북한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가를 새삼 깨우쳐 주는 값진 경험을 남겼다. 아무리 우리측 제의가 대의명분을 갖고 타당성을 지닌 것이라도 우리 내부가 결속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항상 북한에 의해 역이용당하고 대화거부의 구실을 줄 수 있다는 경험이다.
7ㆍ20 선언직후 남북한 교류를 실현시킬 수 있었던 기회가 무산된 과정에서 정부당국과 재야단체가 보인 절차상의 명분 다툼에 대해 모두가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범민족대회를 추진해온 재야단체가 정부의 원칙적 입장과 권위를 존중했던들 북한이 판문점까지 보냈던 예비회담 대표단을 철수시킬 구실은 주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을 방문하려는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보장을 받아내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당연한 행정적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재야단체들은 이러한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반통일적ㆍ비민주적이라는 비판적 입장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시대착오적인 전제체제아래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가 분열됐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통일」을 구실로 한 파괴적인 시위나 불법적인 행동을 자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13일 임진각에서 초소의 철망을 절단기로 자르고 판문점쪽으로 가려고 한 행위도 같은 논리에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통일은 어느 일방의 주장이나 큰 목소리로 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여건에 맞게 실현가능한 것부터 제안ㆍ의논해가며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7ㆍ20선언이후 정부가 취해온 조치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면에서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교류제안을 놓고 정부부처간에 협의가 없었고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다급하게 충동적이란 인상을 주는 후속조처들을 내놓았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는 겸허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산된 남북대교류 제안을 두고 심지어는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알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의 통일정책에서 증명해주어야 할 것이다.
시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앞으로 남북교류가 반드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합의하기 쉬운 최대공약수부터 찾아내는 긍정적인 측면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북한 당국자는 물론 통일을 추진하는 모든 사회단체ㆍ개인 할 것 없이 그러한 공통점에 기초한 합리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자기책임을 다하는 분명한 사명감을 갖추어야 할 때라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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