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판타지 같은 '영화강국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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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발표회장에는 정부 쪽에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과 안정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에선 이미경 영화발전특위 위원장, 이광철 간사가 참석했다. 한국 영화정책을 좌우하는 힘있는 인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먼저 "2011년까지 세계 5대 영화강국을 실현하겠다"(김명곤 장관)는 말과 함께 야심찬 목표가 제시됐다. 극장을 찾는 관객수를 연간 1억5000만 명에서 3억 명으로 늘려 국내 영화시장을 3조원 규모로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도 지난해 760억 원에서 5년 뒤 3000억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장관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읽어나가는 대목에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영화발전기금 4000억 원 마련,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확대 등 핵심 내용은 이미 발표한 정책의 '재탕'이었기 때문이다. 40여 쪽에 달하는 발표문에선 새로운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정책도 일부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것이 '예술영화 전용관 70개 확보방안'. 올 초 정동채 전 장관이 "예술영화관을 100개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것에서 숫자만 30개 줄였다. 100개까지는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했겠지만 100개든, 70개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영화인들은 "근본적으로 예술영화를 찾는 관객이 줄어드는 게 문제다. 관객을 개발하는 노력없이 단순히 극장을 늘리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 정책은 수요(관객 개발)와 공급(상영관 확대)의 균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공급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이다.

그런가하면 이미 발표한 정책을 은근슬쩍 없던 일로 돌리기도 했다. 극장 입장료 수입을 제작.배급사와 극장이 나누는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다. 역시 정 전 장관이 "제작.배급사와 극장의 수입배분 비율이 외화는 6대 4, 한국 영화는 5대 5다. 한국영화도 제작.배급사에 6이 돌아가게 하겠다"고 천명했던 것인데 이번 발표에선 아예 빠졌다. 극장들이 똘똘 뭉쳐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문화부는 정책추진의 신뢰만 잃은 셈이 됐다.

이번 발표대로 5년 뒤 극장 관객수 3억 명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밑그림이 부실하면 결과도 기대에 미치기 어렵다. 지나친 욕심보다는 하나라도 현실성있게 차분히 추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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