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한편으론 부러웠지, 주먹 좀 쓰는 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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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정경호.이태성.장희진.연제욱
장르:청춘 액션 드라마
등급:18세

20자평:한국 남성의 탄생에 대한 스타일리시한 고찰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이 돌아왔다. 데뷔작 '여고괴담'(1998)에서 '아카시아'(2003)로 이어지는 핏빛 호러 행진에서 한숨 돌린 듯한 영화다. '폭력써클'. 그러나 제목만큼이나 역시 만만치 않게 센 하드보일드 청춘영화다. 어찌 보면 이 땅의 청춘들이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끔찍한 호러라고 말하는 듯도 하다. 호러 장르에 기대어 학교라는 제도적 폭력을 고발했던 '여고괴담'에 비추어 보면 '남고괴담'쯤 되는 영화다.

영화는 '비트'에서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어지는 남성 청춘물 계보를 좇는다. 평범한 고교생들이 끔찍한 악에 휘말리는 과정을 통해 한국 남성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춘기의 통과의례처럼 보이는 '폭력 문제'를 통해 한국 남성은 어떻게 형성되며, 남성 문화의 폭력성은 어디서 연원하는지 묻는다.

90년대 초, 고교생 상호(정경호)는 군인인 아버지를 좇아 육사를 지망하는 모범생이다. 공부도 싸움도 축구도 잘하는 상호는 친구들과 '타이거'라는 축구모임을 만든다. 어느 날 우연찮게 이웃 학교 폭력서클인 종석(연제욱) 일당과 시비가 붙고, 종석의 여자친구 수희(장희진)가 상호와 가까워지면서 문제는 더욱 꼬인다.

한국 남성의 폭력성 탐구라는 점에서 영화는 선배인 '말죽거리 잔혹사'의 성취를 뛰어넘지 못한다. 폭력과 시대의 관계에 대한 성찰도 다소 미진하다. 이 영화에서 오히려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남성다움에 대한 한국 남자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집대성했다는 것이다. 상호는 공부도 싸움도 잘하는 의리 있는 리더, 영웅이다. 적장의 연인(수희)은 영웅에게 스스로 투항한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우정에 대한 신비화다. 이들이 폭력의 악순환에 개입하게 되는 동기는 "친구가 맞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어서"다. '친구'나 '비열한 거리'에서와 같은 배신은 없다.

영화는 남성성의 형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그에 대한 로망이라는 이율배반을 조화롭게 녹여낸다. 감각적이고 힘찬 연출, 신인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가 강점이다. 정경호.장희진, '제2의 류승범'이라 할 만한 연제욱 등이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탁월한 음악의 사용도 인상적이다. 특히 데이비드 리 로스(David lee roth)의 '저스트 어 지골로(Just a gigolo )'가 흐르는 엔딩 장면은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Bad Case Of Loving You)'가 흐르는 '친구'의 질주 장면에 버금갈 정도로 흥겹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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