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투쟁/퇴로없이 일단 강공/김대중 총재의 속셈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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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옥외집회 결과따라 가투 결정/사실상 항복요구… 호응 미지수
평민당의 김대중총재는 17일 대여 협상선행 충족조건 세가지를 적시하면서 소속의원 70명 전원의 의원직사퇴서 제출시기ㆍ방법은 물론 장외투쟁의 방안을 공식천명하고 노태우정권 퇴진운동까지 거론했다.
김총재의 이같은 전략추구가 노대통령을 흔들어 지자제등에 양보를 얻어내고 평민당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있는지,아니면 조기총선으로 이어질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당분간 강수행진이 계속될 것임은 분명해졌다.
김총재는 이날 제헌절기념사에서 『무릎꿇고 복종하느니 보다 서서 싸우고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다』는 과거 독재정권 아래 핍박받을때 즐겨쓰던 수사를 동원해 ▲13대 국회해산과 총선거 ▲지자제실시 ▲날치기 악법철회라는 세가지 전제조건을 배수진으로 쳐서 퇴로를 스스로 차단했다. 한마디로 이번의 의원직사퇴 결의가 확고하며 단순한 정치쇼가 아니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김총재는 특히 자신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대여 대화자체를 거부함은 물론 「국민」을 빌려 노정권 퇴진운동까지 불사하겠음을 시사해 정국을 매우 가파른 쪽으로 몰고 있다.
이를위해 김총재는 범야권이 연대한 비폭력 대중운동을 기조로 설정했는데 이는 당장 「행동」을 수반하는 데 대한 거부반응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총재는 제한된 원외투쟁이라는 전제아래 옥내외 집회와 유인물 살포등의 방법을 쓰면서 가투는 당분간 않겠다는 것이다. 그가 굳이 「한동안」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여론이 지지하면 할 수도 있다는 뜻이며 그는 머리속에 87년 6월사태를 희망섞어 그리고 있다.
사실 김총재는 날치기통과후 의원직총사퇴ㆍ원외투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름으로 파악한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으며 이 며칠새 꽤 고양되어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측근들은 김총재의 노선을 제어ㆍ선회시킬 수 있는 것은 여당의 극적인 양보조치나 여론의 반발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둘중 여당측의 양보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결국 평민당의 가투에 민심의 이반현상이 얼마나 일어나느냐가 김총재의 의지를 꺾는 유일한 수단이란 해석이다.
만약 보라매집회로 시작된 범야권의 대여투쟁이 어느정도 호응을 얻는다면 그가 거리투쟁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가 6ㆍ29를 「반승반타협」이라고 후회(?)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발상이다. 그는 장외투쟁에서 야권통합이란 또하나의 전략목표를 쫓고 있다.
김총재는 통합야당의 출현과 이에대한 수권기대의 제고없이는 자신의 이번 투쟁이 감정적ㆍ이기적 발상의 소산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점을 잘알고 있다.
김총재는 『시간이 없다』며 18일 이기택 민주당총재와의 회담에서 양당통합을 합의하고 이번주중 재야를 포함하고 3자가 통합선언을 하자는등 통합의 현실적 장애를 무시한 이상적 슬로건을 과거 어느 때보다 고창하고 있다.
이는 야권의 대동단결을 앞세워 투쟁의 강도를 높이려는 속셈 못지않게 자신에 대한 2선 퇴진주장을 차제에 불식시키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는 이번의 강경투쟁이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라이벌 의식에서 연유했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과장에 가까운 반발을 보여 거꾸로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냈다.
그가 실제로 자신이 내건 투쟁명분ㆍ방법 등이 국민의 상당한 호응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평민당을 경원시하던 중산층과 지식인의 동조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쩌면 내심 최소한 지자제부문의 양보는 받아낼 수 있다는 계산하에 당원들을 독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역 의원들이 현재로서는 김총재의 수순에 순응하고 있으나 지난해 여름 공안정국 당시의 장외투쟁때와는 달리 자신에 차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많은 의원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김총재의 장외투쟁선언의 논리에는 몇가지 억지성주장이 있고 과연 그가 민감하게 의식하는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첫째,그는 대화의 선행조건 세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세가지 조건은 여권의 완전한 항복을 뜻하는 것이어서 여권에서는 그럴 경우 아예 정권자체를 야권에 넘겨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둘째,지금까지 야권통합의 걸림돌이 돼온 자신의 거취는 일언반구 없이 정국경색의 절묘한 기회를 틈타 3자통합의 바람몰이 작전에 나서고 있는데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 상당히 경계,이기택총재가 현시점에선 우선 대여 공동투쟁에 나설 때라고 주춤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현실적으로 현재의 정국파행이 김대중ㆍ김영삼씨간의 차기대권경쟁의 전초전적 성격임은 국민 상당수가 느끼고 있는 현실인데도 이를 지적한 일부 언론을 김총재가 매도한 게 두 김씨에게 식상한 국민들을 수긍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들 보다 훨씬 앞선 우리 국민들이 그걸 허용하겠느냐는 것이 모든 문제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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