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핵무장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위크 북한의 핵실험으로 동아시아에 핵 도미노 현상의 우려가 커져간다. 누구보다 북한의 협박을 두려워하는 일본이 핵무장에 가장 근접했다는 전망이다. 일본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대만과 한국에서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분명 동북아에서 핵개발 경쟁이 가속화하고 중-일, 중-대만 갈등의 고조가 예상된다. 공교롭게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지난 10월 3일, 미 하원정보특별위원회는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이 핵실험에 나선다면 “일본과 대만, 한국이 핵무장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지난 10월 18일자에 ‘그렇다면 일본도 핵무장?’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핵무기 보유의 현실성을 검증했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따라서 방위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해진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 실제로 일본의 이웃인 한국은 북핵사태 이후 일본 내 강경파의 입지강화를 우려한다고 일본판은 지적했다. 동국대 이철기 교수는 일본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의 핵무장을 정당화하기 쉽다. 북한은 핵탄두 한두 개를 보유하는 정도겠지만 일본이 핵무장한다면 중국 수준의 핵보유국이 된다. 그렇게 되면 세계질서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일본은 북한의 수천 배에 달하는 40여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며 핵무기 수십 개의 개발이 가능하다.

반면 하와이 퍼시픽 포럼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브래드 글로서만 연구실장은 정반대의 견해를 편다. 일본은 앞으로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본(그리고 중국, 미국, 한국)이 북핵 실험의 영향을 우려한다 해도 그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리라는 가정(우려)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그는 단언한다. 핵무장이 불안요소를 없애기보다 긴장과 불안을 더 고조시킨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글로서만은 지적했다.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은 오랫동안 핵관련 논의를 금기시해 왔다.

그러나 북핵 실험 때문에 일본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일본 국가안보 정책의 재검토가 불가피해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미 일본 내 보수파와 국가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핵무장론이 재부상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 교토대 대학원 교수는 지난 9월 출간된 ‘일본 핵무장의 논점’이라는 저서에서 방위정책의 한 대안으로 핵보유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둘러싼 위기나 중국 군사위협의 확대, 그리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실효성이 약화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아베 신임 총리 등도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할 때 분명 북핵 문제를 그 근거로 제시하리라 전망된다.

핵무장론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일본은 적대적인 이웃나라에 둘러싸여 있다. 둘째 미국이 일본을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다. 셋째 일본이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지키려면 핵을 보유해야 한다. 이 같은 핵무장론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1950년대부터 일본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비준한 76년까지 툭하면 불거져 나와 미국과 영국을 긴장시켰다. 근래 들어서는 저명 정치인들도 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아베 총리는 관방 부장관이던 2002년 와세다대 초청 연설에서 ‘소규모’ 핵병기의 보유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도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 핵무기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이 앞으로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의회에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핵 개발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74년 시리아의 하페즈 아사드 대통령에게 “일본도 핵개발을 고려한다. 80년대까지 일본의 군사력은 현저하게 증대된다”고 말했다. 그 다음해 일본 과학기술청의 원자력과장이 영국대사관의 한 직원에게 일본도 3개월만에 핵 보유가 가능하다고 말해 영국 정부가 진상조사에 나서는 소동도 있었다. 10년 전에는 하타 쓰토무(羽田孜) 당시 총리가 일본은 핵무기 보유 능력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1960년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는 핵무장 가능성을 미국에 흘려 미국으로부터 핵 우산 정책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안보정책은 기술력과 보유자원 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우선 일본 안팎의 저항이 상당히 거세다. 아직도 일본인의 의식 속에 2차대전의 기억이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 구상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글로서만은 설명했다. 또 이웃 나라들은 일본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NPT 체제가 크게 흔들려 세계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우려한다.

1993년 첫번째 북핵 위기 이후 일본 방위청의 의뢰로 실시된 조사 결과, 일본의 핵무기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거의 의미가 없다고 나타났다.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불신하게 되고, NTP를 약화시키며,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핵무기 개발 명분을 제공하고, 잠재적으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위협한다(일본이 독자 방어능력을 갖추면 미국이 일본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고도 일본의 안보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일본은 너무 작고 인구가 밀집해 있다. 누가 핵무기를 보유하든 일본은 약점이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또 반대론자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안보환경을 위협할 만큼 위협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엄연히 존재하며, 세계를 여러 번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비축한 소련에도 효력을 발휘했던 억지력이 소형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돼도 핵을 실제로 활용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데 적어도 2∼3년은 걸린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나카니시는 최소한 10년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탄두만 만든다고 억지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핵탄두를 발사할 미사일, 그것을 배치할 잠수함이나 사일로도 필요하다”고 썼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방위청장관은 북의 핵이 단기적인 위협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핵미사일을 보유하려면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도 2∼3년 안에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의 핵보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일본에 플루토늄이 많다 해도 플루토늄형의 핵폭탄에는 기폭실험이 필요한데 일본에는 그런 실험을 할만한, 사람이 없는 사막지대도 해외 영토도 없다. 미국 네바다주 핵실험장급이 되려면 홋카이도 4분의 1 면적이 필요하다. 본토에서 떨어진 섬은 있지만 지반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면 해저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좁은 일본 영토 내에서 실시하면 주민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또 일본에 발전용 핵연료를 수출하는 나라가 일본의 핵무장을 경계해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에너지 정책이 타격을 받게 된다.

반면 뉴스위크 일본판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마당에 자민당은 내년의 참의원 선거까지 핵무장에 관해 논의하리라고 시게루는 뉴스위크 일본판에 말했다. “자민당 방위정책 검토 소위원회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 평가할지 논의하는 과정에 일본의 핵보유 여부도 거론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이다. 일본 안보정책 입안자들은 일본의 핵보유가 국가 안정을 해치고 실제로 일본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행히 일본 국민들도 핵무기가 일본의 방위력에 보탬이 되기보다 핵심적인 안보이해에 오히려 피해를 준다는 인식을 같이 한다. 아베 총리가 10월 초 의회의 한 위원회에서 설명했듯 “핵무기 보유는 선택방안이 아니라는 우리의 방침을 바꿀 의도는 없다. 비핵무장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우리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싶다”는 방향이다.

유일한 변수는 미국의 대일 안보 의지다. 미국의 방어의지가 약화된다고 느낀다면 일본 내에서 독자 핵무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핵우산은 문제없다고 평가했다. “미군 재편으로 미일 동맹은 오히려 견고해지고 신뢰성이 높아졌다”고 방위청 방위연구소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주임연구원은 말했다. 그렇지만 핵우산에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고 뉴스위크 일본판은 지적했다.

방위청 등에서 오랜 기간 이 문제를 연구해온 NBCR(핵, 생물, 화학, 방사능 대량살상무기) 대책추진기구의 이노우에 타다오(井上忠雄) 이사장은 “핵우산은 상호 신뢰로 성립되는데 (일본 영해, 영토 내에) 미군의 핵을 반입하지 못한다면 억지력이 제한된다”며 ‘반입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개정한 ‘비핵 2.5원칙’을 주장했다.

따라서 북한 핵실험 이후 확산되는 불안을 진정시키는 방안은 미일 양국 정부가 동맹관계 강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는 길뿐이다. 다행히 양국이 그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글로서만은 평했다.

일본 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핵개발 지지파와 반대파 모두 의견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정부나 국가 수준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도 그런 논리에 입각해 핵무장 방안에 관한 전국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핵무장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에 관한 국민적인 토론이 일본에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차적인 과제는 비핵국가 신분 유지, 둘째는 핵확산금지조약 하의 체제 강화다. 안정되고 신뢰성있는 국가안보 정책의 기초를 제공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참혹한 전쟁을 일으켜 핵으로 패망한 경험이 있는 일본. 그들이 핵무장에 관해 얼마나 냉철하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차진우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jinch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