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부시, 고양이와 쥐 禪문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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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핵을 둘러싼 상황과 관련국 간 관계를 '쥐와 고양이'에 빗대며 각자의 속내를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23일 서울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盧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북핵 문제를 놓고 대화하던 중 우리 속담을 인용, "쥐(북한 지칭)도 도망갈 구멍이 없으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고양이가 5마리(한.미.일.중.러 5개국 지칭)나 있으니까 (쥐에게 당할) 걱정 없다"는 식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盧대통령은 다시 "그중 가장 먼저 물릴 고양이가 한국"이라고 얘기했고, 부시 대통령은 "힘센 고양이(미국 지칭)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발언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盧대통령은 당시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 위협을 하는 가운데서도 경제개혁.개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측면을 잘 활용해 대화를 통해 핵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함께 노력하자"고 언급했다. 두 정상의 '고양이와 쥐' 언급은 이같은 대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 소식통은 "盧대통령은 '고양이와 쥐' 은유를 통해 '북핵 문제는 강.온 정책이 다 필요한데 강경 일변도로만 몰면 안된다'는 암시를 미국 측에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993~94년 제1차 핵위기 당시에는 한승주(韓昇洲)외무장관(현 주미대사)이 국내외의 일방적 대북 강경론을 견제하기 위해 궁지에 몰린 쥐 얘기를 자주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우리 측 관계자들은 "한.미 두 정상이 대화 과정에서 전례없이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다"고 강조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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