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정상회담 전망… 미 해리슨씨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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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경협강화ㆍ외교주도권 겨냥/한반도 긴장완화 군축문제가 쟁점/한국은 큰마음 갖고 평양달랠 필요
노태우­고르바초프 한소정상회담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 사실적 국가승인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 소련측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합법적」승인을 미룸으로써 대한관계에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라고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겸 저술가인 셀리그 해리슨씨(미카네기재단 국제평화연구소)가 4일 주장했다. 해리슨씨는 중앙일보에 특별기고한 한소정상회담 분석 기고문에서 한소 양국정상의 한반도안정문제는 북한핵시설과 주한미군의 핵무기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한소간 관계정상화가 금년내 실현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해리슨씨의 특별기고 전문.<편집자주>
◎셀리그 해리슨/카네기재단 국제평화연 연구원/남북한 방문… 언론인겸 저술가
카네기재단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ㆍ미워싱턴 포스트지 전동경지국장(68∼72년) 아시아 중동문제전문가로 특히 미국 제3세계 관계에 관해 정통한 언론인겸 저술가. 남북한을 모두 방문,한반도문제에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는 『넓은 심연­아시아 내셔널리즘과 미국정책』(1978년)등 다수가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노태우 한국대통령을 만나기로 결정한 것은 소련이 급속히 추구해온 태평양지역에서의 경제 파트너 모색방안의 일환이다.
한국의 대소 무역 및 투자는 소련경제가 눈에 띌 정도로 악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모스크바로선 중요한 소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를 수행,워싱턴에 도착한 소련의 최고위관리는 한소관계가 일본의 시베리아개발에 대한 더욱 유연성 있는 접근을 촉진하는 압력방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솔직히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은 미국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소련이 대한국 전면관계수립 준비태세가 돼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불과 2주전만해도 워싱턴을 방문,한 회의에 참석했던 소련의 지도급 대한국문제전문가는 한소공식관계수립은 2∼3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소련의 영향력있는 연구기관인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원(IMEMO)의 블라디미르 이바노프 태평양문제연구소장은 소련의 대한국관계는 미국의 대북한관계 속도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노태우­고르바초프 정상회담으로 금년내 한소관계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양국관계정상화는 한소양국정상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한ㆍ미ㆍ소 3개국이 지금까지 견해를 달리해온 제반 선결조건들에 합의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분명히 남북한 문제에서 평화구축자로서의 역할을 원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의 대한 승인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측이 요구해온 즉각적인 「합법적」관계정상화를 저지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에 따라 대한관계에서 양국 경제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외교적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될 것이다.
소련의 분명한 의도는 남북한ㆍ미국간 군축협상의 시작에 있다. 이같은 소련의 의도는 ▲한반도에 대한 미소무기판매 상호 종식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매년 실시해온 팀스피리트 훈련의 종국적 중단을 위해 시간표를 발표하는 문제등과 관련한 미소 양국정상회담과도 연결돼 있다.
소련관리들은 지난 88년 11월의 북한측 군축제안이 미소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토의는 북한의 핵무기개발계획의 위험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
북한측의 군축제안은 주한미군의 핵 및 재래식군사력을 점진적으로 철수하고 이를 남북한의 상호 군사력 감축과 연관시키고 있다.
북한측은 핵확산금지 조약에 따른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북한핵시설 검증을 거부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IAEA회의에 참가한 북한측 대표는 미국이 군축협정에 의거,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IAEA의 북한핵시설검사를 허용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소련은 미국에 대해 북한의 군사핵무기개발을 어떠한 경우에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IAEA 핵검증을 수락토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해왔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지난 2월의 모스크바 미소 외무장관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소련은 북한이 핵안전문제와 관련,IAEA와의 협상을 종결지을 단계에 근접하고 있음을 주목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결국 IAEA협상에서 강경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노태우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 문제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라는 더욱 광범위한 군축과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한 소련관리는 이같은 미군핵무기 철수가 불가능할 경우 최소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선언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노대통령을 만날때 노대통령이 부시 미대통령에게 북한핵문제는 미국의 협력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해 줄 것을 촉구해줄 것을 제안할 것이라고 이 소련관리는 전했다.
북한이 지난 88년 제안한 남북한 군사력감축 제의에 대해 미행정부는 냉담한 반응이다. 미국은 휴전선 부근에 집중배치된 남북한 군사력을 감축하지 않고 단순히 남북한의 전체군사력을 삭감하는 것은 한반도긴장완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현재 휴전선 지역에 배치된 남북한 군사력이 동시에 철수되지 않는 한 평양측이 제안한 미군의 우선 철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련의 남북한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은 현재 명확하지 않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이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시키는 것이라는 비난을 북한측으로부터 듣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이번 기회에 노대통령을 만남으로써 적어도 한국이 주장하는 「국가연합」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한마디로 한국측엔 엄청난 외교적 승리이며 북한측엔 참담한 패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한국이 북한이 당한 곤경을 즐거워하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할 경우 북한은 절망한 나머지 더욱 극단적 방향으로 갈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앞으로 소련과 협력,북한에 양보할 수 있는 것은 하면서 북한지도부가 보다 온건한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방법일 것이다.
이번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은 북한과 소련과의 마찰이 이미 북한지역에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시점에서 개최된다. 김일성 개인숭배를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타스통신 평양주재 특파원 알렉산더 셰빈을 5월13일 추방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수행중인 소련 당중앙위대변인 니콜라이 시실린은 노­고르바초프 회담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북한에 대한 소련측의 분노를 위장하려들지 않았다.
북한측이 거센 반발을 보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것 아니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시실린은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정책이 아닌 우리자신의 정책을 가져야 한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비록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외교관계수립에 동의한다해도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향한 의미있는 진전은 미국과 소련이 동아시아 전지역에서 보다 광범위한 긴장완화 노력에 착수할때만 가능하다.
한국측은 태평양과 인도양지역에서의 상호 군축을 논의하자는 고르바초프의 거듭된 제안을 수용하라고 부시대통령에게 촉구함으로써 북방정책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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