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금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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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4일 경찰이 숭실대에서 벌인 작태는 완전히 난동이다. 시위학생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복전경들은 학교 건물 유리창을 마구 깨뜨렸는가 하면 아예 건물 안으로까지 들어가 문과 거울,괘종시계 등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쉈다.
그래도 말리는 경찰간부도 없었고,관할 경찰서장도 부하들의 이런 행패에 대해 학교측이 항의하러 찾아가기까지 한마디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다.
비단 이번 사건뿐 아니라 최근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은 지휘부가 용인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거리낌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23일에도 경찰을 성심여대에 난입하여 전교조 교사들의 연행을 말리던 여학생들을 죽도로 마구 때리고 축제행사용 깃발과 깃대를 모두 찢고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요즘 시위진압 경찰들은 심지어 취재기자나 시위자를 심하게 다루는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까지도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도대체 이런 분위기는 누가 조성한 것인가. 경찰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파출소를 습격하기도 하는 학생등 시위자들에게 그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한 경찰은 더 이상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일 수는 없다.
우리는 경찰의 이러한 방종이 공권력의 강력한 집행을 거듭 강조해온 경찰 수뇌부의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검경의 수뇌부는 최근 불법적인 시위에 대해서는 공권력으로 즉각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힌바 있으며 검문·연행에 항거할 경우에는 단호히 대응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공권력의 집행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공권력의 집행이 법적인 뒷받침이 있고,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경우에만 한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공권력의 집행이 법테두리를 훨씬 벗어나 폭력화하고 있고,또 그동안 검경의 수뇌부가 밝힌 방침이나 지시도 법을 벗어나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면 일선에서 빚어지고 있는 잦은 일탈에 대해서는 마땅히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공권력의 권위와 힘은 물리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더구나 그 물리력의 행사가 법이 허용하고 있는 한계마저 벗어날 때 공권력은 오히려 권위와 힘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공권력의 진정한 권위와 힘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여론의 강력한 지지와 어떤 경우라도 법적 절차와 한계를 지키는 스스로에 대한 엄격성과 금도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문책을 하면 시위진압에 나선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것이라든지,행동의 한계를 엄격히 하면 시위진압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등의 염려로 우물쭈물 넘겨버릴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공권력의 정당성과 권위를 해치는 원천이며,그로인한 권위의 실추는 결과적으로 시위진압의 부담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관들도 얼마있으면 일반 사회로 복귀할 이 땅의 젊은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행사해도 좋다는 인식을 은연중 심어준다면 이 사회의 장래는 어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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