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과」의 실을 보여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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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환영하는 24일의 만찬에서 일본 국왕이 한일간의 과거사에 대해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과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확정되었다.
일본 국왕의 발언내용은 외형상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해야 한다는 우리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견해에 따라서는 과거역사에 대한 반성의 표현도 히로히토(유인) 때보다 한발짝 나아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적할 것은 반성의 뜻이 담겨야 할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용어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러한 표현이 일본이 과거를 사과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지만 일본측이 진정 그러한 의도로 사용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
노대통령도 만찬회 답사에서 『나는 평성시대가 일본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와 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과 우의를 증진하는 연대가 될 것』을 희망했듯이 우리는 노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일본의 새로운 국왕의 등장과 함께 한일간에도 새로운 협력관계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지려면 모든 분야에 관해 공동의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식의 차원이 다르면서 공동의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출발점이 되는 과거역사에 대한 인식에 차이와 오해가 있어서는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지향하기 어려운 것이다.
노대통령의 일본방문 목적은 급격히 재편중인 국제질서 가운데 인접국으로서 양국간의 긴밀한 협력과 이해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데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해소되면서 국제질서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블록 공동체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우리도 인접국인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에서의 협력관계를 모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또 미·중·소의 군사적 긴장완화 추세와 함께 대두된 지역 안보부문에서의 문제점을 논의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간의 경제협력,과학기술이전,무역불균형 시정문제에서부터 재일교포 처우개선,원폭피해자 보상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야만 우리는 노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미흡한 느낌이 많지만 일본 국왕은 일단 양국간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매듭지었다.
일본측도 그렇겠지만 한국으로서도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 재론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일본은 앞으로 행동을 통해 미흡했던 외교수사를 보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가이후(해부준수) 일본 총리가 과거 역사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고 한 발언의 실천을 통해 진정한 한일 우호협력관계가 새 출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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