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고집하는 한 활로 찾기 어려울 것"|일 와타나베 교수 논문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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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시아경제 전문가인 일본 와타나베 도시오(도변리부) 교수(동경공대)가 북한경제의 침체상황을 분석한 논문을 『중앙공론』 최근호에 기고,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늘의 북한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와타나베 교수의「신성국가 북조선의 고립과 정체」라는 기고문의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북한은 지금 정권수립 이래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북한은 서태평양 지역의 「산업주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유독 「주체사상」에 입각한 특이한 공산주의의 낡은 틀을 유지하는 「신성국가」로 남아있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상대에 처해 전형적인 스탈린형 집권적 통제경제 하에 있는 한 심각한 정체를 타개할 수 있는 새 활로를 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혼란과 부진의 직접적 원인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최종 확인한 80년 6차 당대회의 「결정」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결정」은 78년에 개시된 2차 7개년 계획에 이어 80년대의 10년간 달성해야 할 야심적인 「10대 전망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자원동원 및 배분의 균형을 단번에 깨는 급진적인 정책변경을 시도한 것이다. 이 정책변경의 배경에는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고화 및 김을 중핵으로 한 「신실권파」 의 기존간부에 대한 권력투쟁이 깔려있다.
6차 당대회 이후 후계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선 대규모 동원체제를 이용해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는 대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신실권파의 위력을 보이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7O회생일(83년)을 축하하기 위해 81년초부터 전개된 「대기념비 창조물 건설계획」이 그 단적인 예다. 인민대학습당, 1백7Om의 주체사상탑, 개선문, 김일성경기장 등이 건설됐고 나아가 3O만km의 간척지조성, 20만km의 개간에 의한 곡물증산, 남포갑문·태천발전소 건설에 당·정부·인민의 총력이 투입됐었다.
88년2월에는 정권창립 40주년(88년9월9일)을 맞이할 때까지 「2백일전투」기간을 설정했다. 「2백일전투」가 끝난 9월에 다시 「새로운 2백일전투」 방침이 채택됐다.
이 같은 연속적인 속도전 상황은 북한경제의 위기적 상황과 이를 타개하려는 당지도부의 초조감을 보여준다. (금년 들어 90년대 속도창조운동으로 이어졌다).
80년대에 공업생산 성장률이 발표된 경우는 80, 82년뿐이다. 더욱이 전년도의 정확한 실적과 비교해 평가할수 있는 수치도 아니었다. 발표수치가 불확실한 것 차체가 북한경제의 심각한 침체를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에너지 및 기초소재산업의 공급능력부족으로 각종 공장의 조업률은 항시 낮았다.
북한경제의 어려움은 물론 오랫동안의 중앙집권적 통제경제체제에 기인한다. 사회주의국가에서도 생산규모가 확대되고 산업연관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집권적 체제가 보다 「분권적」인 것으로 바뀌는 추세다. 그러나 북한은 날이 갈수록 중앙집권적 관리체제를 더 강화했다.
물론 북한에서도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부분적으로나마 경제를 「분권화」하려는 신중한 시도가 나타나고있긴 하다. 그 예가 기업의 독립채산제다. 과거에는 국가로부터 조달하던 유동자금을 기업이 스스로 은행에서 대출 받아 나중에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
또 소규모건설 및 기술발전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서는 기업이 자신의 유보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밖에 기업의 임금기금도 기업수입으로 충당하고 부족하면 은행대출로 보충할 수 있다.
농업생산에서도 15∼20명의농민 「분조」를 단위로 하는 일종의 「청부제」가 채택됐고 농민에 대한 물질적 자극을 활용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북한의 장래가 개혁·개방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유연한 통일정책을 펴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개혁시도가 배태되고 있는 현 상황을 눈여겨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중국의 등소평 체제나 베트남의 구엔 반 린 체제가 강고한 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주의의 내용을 「혁명적」으로 바꿨던 예에서 보듯 북한도 체제개혁에의 외압에 대해 반응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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