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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떠돌이 개가 짖는다, 세상을 향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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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스테디셀러인 '어린 왕자'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같은 성인동화를 즐기는 이들이 반가워 할 책이다. 비록 화자(話者)가 개이지만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이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고, 작가가 남미권인 아르헨티나 출신이란 점이 더더욱 '나의 라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슬프고 아련하고 그러면서 미소를 자아내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만약 우리 엄마 젖이 두 개 더 있었다면 내 불행과 행복, 다시 말해 내 모험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귀돌이'라는 떠돌이 개가 자기 삶을 회고하는 형식인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11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에게 엄마 젖은 차지가 가지 않는다. 젖꼭지가 열 개 뿐인 탓이다. 굶주림은 그의 운명이다. 농장으로 구걸을 다니다 '야수'같은 경비견들에게 쫓기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결국은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처음엔 애완견 되기를 시도하는 귀돌이. 그러나 수습 애완견의 삶은 만만치 않다. 피자 박스를 탄 채 욕조를 항해하고, 롤러스케이트도 타야하며 세탁기에 들어갈 위기도 겪는다. 주인공은 거기서 결정적 사고를 친 후 애완견을 사람보다 더 가꾸는 이모네로 쫓겨가지만 결국 자유의 냄새를 따라 떠돌이 생활로 돌아간다. 굶주림을 스스로 해결하다가 '갈비씨'란 개와 우정을 나누고, 나중에는 서커스의 광대 노릇.장난감 모델.연구소의 실험용을 거치며 변덕스럽고 잔인한 세파에 시달린다. 물론 그 와중에 서커스의 '이쁜이'와 풋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깜순이'를 연구소에서 구출해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풍자는 채찍처럼 맵고, 삶에 대한 통찰은 현자의 잠언처럼 깊다.

"나는 수습 애완견이라면 염두에 두어야 할 첫째 항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그것은 치욕을 참아내는 것" 애완견은 수컷이어야 한다는 예비주인들에게 성별 검사를 받은 뒤 주인공이 하는 다짐이다. 냉동실의 익히지 않은 햄 곁에 두었던 '개처럼 생긴 어떤 신사 얼굴이 있는 퍼런색 종이 쪼가리(돈)'를 2455달러나 먹어치우고는 "내 삶에서 가장 향기로운 돈이었다"고 천연덕스레 이야기하거나 뒤늦게 이를 발견한 안주인의 눈에서 "개울물이 흘렀다"고 전하는 대목에선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함께 도망가자는 권유를 뿌리치는 서커스'이쁜이'와의 이별 장면을 "잊을 수 없는 황홀한 향기는 공기 중에서 엷어지고 또 엷어지더니 추억으로 변해 버렸다"고 표현하는 마지막 장면은 전혀 개소리같지 않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귀중한 것은 작가의 메시지다. "세상은 회전목마와 같이 돌고 도는 것이어서 눈 앞의 성공을 홀랑 뒤집어 놓기도 하고 때론 우리를 성공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을 때도 있다" 혹은 "결국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 힘껏 되는대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기회는 잠시 폈다 곧바로 시드는 꽃" 같은 구절은 책을 잠시 덮고 한 번 쯤 생각하게 만든다.

해피 엔딩인 만큼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어른들도 반가운 작품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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