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방송은 제대로 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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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잇따라 사흘째 비정상적인 편성과 방송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는 KBS 사태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불안과 우려로 가득차 있다. 노조를 중심으로 한 KBS 사원측은 신임 사장이 「비민주적」인 경력을 지닌 인물이며,그런 인물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라고 규정,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정부와 KBS 경영진 측은 신임사장의 선출과 임명과정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며,신임사장 취임 거부나 배척은 정부와 회사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불법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양쪽의 주장이 맞선 가운데 신임 사장이 부임을 강행하고,이를 저지하는 와중에 몸 싸움이 붙고,공권력이 동원됐으며,1백여명의 사원이 연행되고,급기야는 사원들의 전면 제작거부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그간의 이러한 사정이 KBS 내부에서의 절충과 타협에 의해 타결을 보지 못하고 방송의 비정상적인 송출로 시청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침으로써 국민의 우려를 불러 일으키게 됐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표명해야 할 명분과 의무를 느끼게 된다.
먼저 KBS 경영진과 신임 사장의 노조측에 대한 대응이 너무 성급했다는 인상을 준다. 좀더 인내심을 갖고 노조측과 만나 설득과 타협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을 계속했더라면 이런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렀겠느냐는 아쉬움이 있다. 노조측이 처음 단계에서는 준법투쟁을 다짐했다가 공권력 투입 이후 전면 제작 거부로 강경 급선회한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방송인이란 지성인 집단을 무차별 연행이라는 수법으로 대응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모닥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름없는 악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조측의 행동을 정당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전임사장의 퇴진과 PD구속 사건등 최근에 잇따라 일어난 사건들을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로 보고 이번 신임 사장의 임명 자체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는 KBS 노조의 시각에 대해 현단계에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고,또 그럴 입장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사장 한 사람의 인사에 의해 KBS라는 거대한 조직과 인력이 장악되리라는 견해에는 선뜻 수긍이 가질 않는다.
더군다나 현재 KBS 사원들은 권력에 의해 완전 장악되다 시피 했던 과거의 질곡을 벗겨버리고 방송의 민주화를 성취한 바로 그 장본인들이 아닌가. 신임 사장의 「과거경력」만을 문제삼아 배척한다는 것은 그래서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인상을 씻기 어렵다.
한마디로 잘라 말해 우리가 중시하고 바라는 것은 방송의 정상화다. 방송 전파는 정부의 것도,어느 집단이 제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 모두의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방송의 모든 편성과 프로그램은 국민들과의 엄격한 약속이며,국민의 시청료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전파는 국민과의 계약이나 다름없다. KBS의 경영진과 사원들은 국민에 대한 계약의무를 엄격히 준수할 책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사장취임 이라는 내부문제로 국민의 공유재산인 방송을 포기하는 행위로 인해 국민을 걱정과 실망에 빠지게 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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