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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만나고 나면 조용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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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무현 대통령은 유독 한.미 관계에 특유의 자신감을 내비친다. 양국 관계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지난 정상회담이 임박해서도 "부시를 만나고 나면 한동안 조용해질 것"이라고 호기까지 부렸다.

부시 대통령 입에서 '한국방위공약은 변함없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침을 재확인했다'는 판박이 수사가 나오자 여권은 "일말의 불안과 우려를 한꺼번에 날렸다"고 환호했다.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손을 들어 줬다는 의미부여 속에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 반대에 나섰던 전직 국방장관.군장성.외교관 그리고 지식인들은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했다는 비아냥도 따랐다. 한국은 이제 조용해질 것인가.

지난번 두 정상의 만남은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지극히 '비정상적' 정상회담이었다. 미국은 관심도 없는, 한국 '국내용 정상회담'이란 말도 나돌았다. 동맹의 정상이 중차대한 때 만났는데도 공동발표문 하나 없었다. 미국 측은 지난해 11월 경주회담 때의 공동발표 이후 덧붙일 만한 사항이 없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경주회담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유엔안보리 결의, 전작권 환수 논란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등 동맹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새로운 정세 전개가 꼬리를 물었다. 그럼에도 두 정상이 만나 대외적으로 다짐할 것이 없다면 온전한 동맹일 수 없다. 회담 후 공식 기자회견이 아니고, '언론의 접근 기회 제공(Press Availibility)'이라는 생소한 형태의 언론회동도 동맹의 상식을 벗어났다. 임기 중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노 대통령의 워싱턴 나들이가 이토록 미국 측의 주목을 받지 못한 동맹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회담의 최대 성과로 내세우는 '공동의 포괄적 (대북) 접근'은 그 내용은 고사하고 미국 측에서 용어 자체에 대한 언급조차 꺼리고 있다. 그동안의 제안들을 재포장해 본격적인 대북 제재를 늦추는 시간 벌기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전작권 이양은 전문적 군사문제다. 이를 군사주권과 자주의 문제로 정치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정치문제화는 안 된다는 부시의 언급을 당국자들이 회담 성과로 치부한다면 이야말로 누워 침 뱉기다. 북한의 위협이 해소되고 우리의 자주 방어 능력이 갖춰질 때까지는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안보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쪽에서 전작권을 넘겨 달라니 미국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일본과의 밀착 속에 전략적 유연성을 갖고, 미군의 주둔 위험과 경비도 줄이고, 무기도 팔고, 반미감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동맹은 국가 간에 상생 발전을 위한 일종의 정치 행태다. 더 큰 동맹의 이익을 위해 개별 주권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자주' '주권'이라? 이런 소탐대실이 없다. 실무자 간에 좀체 합의가 안 될 때 정상이 만나 상호 신뢰와 미래의 비전에 입각해 매듭을 풀어 주는 것이 정상회담이다. 북핵 해법과 동맹 조정, 북한 인권, 전작권, 한.미 FTA 성사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국내적으로 복잡한 이해 충돌을 빚고 있다. 각론별로 접근할 수가 없고 이들을 하나의 큰 틀 속에서 조화시키고 아우르는 21세기적 한.미 동맹의 큰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지난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비전의 제시와 정상 간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거리를 두면서 예의를 갖추고, 이견을 덮고 쉬쉬하면 겉모양은 좋아 보이겠지만 동맹은 속으로 곪게 마련이다. 부시가 이견을 숨기며 한.미 공조의 과시를 연출한 것은 6자회담의 여타 당사자들, 특히 한.미 동맹의 틈새를 노리는 북한의 오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미 관계가 굳건하다는 대통령의 믿음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가정과 자만에서 오는 자신감은 '자주 왕따' 속의 '벌거벗은 임금님'꼴이 되기 십상이다. 지지율 20%대의 대통령 생각이 얼마나 한국을 대표하느냐는 대표성의 문제도 새롭게 제기된다. 외교 안보 전선에서 '폭주'를 멈추고 남은 임기 동안 거국적으로 대처하는 역사 앞의 겸손이 절실하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