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선생의 음악 아직도 귓전에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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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도쿄예대 소가쿠도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95.사진)의 플루트 독주곡'소리'와 실내 앙상블을 위한 '로양(洛陽)'이 연주됐다.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이 주최한 '윤이상평화음악축전'의 첫 무대였다. '아시아의 약동하는 음들'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공연에서 윤이상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 한국의 전통음악과 한국 출신의 신예 작곡가의 작품도 함께 연주됐다. 안식년을 맞아 일본에 머물고 있는 김영재(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가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시나위''해금산조'는 물론 해금 독주를 위한 자작곡'조명곡(鳥鳴曲)까지 들려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객석에는 일본을 방문 중인 대만작곡가연맹 회원 10여 명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황룽판(국립타이베이예술대 음악원장)은 윤씨의 제자다.

함께 연주된 박은하(36)씨의 '나비의 춤'(1997)은 가야금과 바이올린.첼로.오보에를 위한 4중주곡. 도쿄 필하모닉 수석 주자들이 위촉해 나가노(長野)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숙명여대, 히로시마 엘리자베스 음대, 도쿄예대에서 수학한 박씨는 2002년 일본 NHK와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한 일본음악콩쿠르에서 작곡 부문 1위에 입상한 바 있다. 그는 "97년 도쿄에서 윤 선생의 오보에 독주를 위한'피리'를 듣고 나서 서양악기로 우리 전통음악 특유의 멋과 맛을 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이상평화재단 기획실장 조희창(43)씨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이에 영향을 받은 현대음악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꾸몄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에서 도쿄예대 앙상블을 지휘한 마쓰시타 이사오(54) 도쿄예대 교수는 이날 연주된 한국 작곡가들과 사제지간이다. 윤이상씨의 제자이자 박은하씨의 스승이다.

윤씨는 일본과 인연이 매우 깊다. 오사카와 도쿄에서 작곡을 처음 배웠다. 74년 교토에서는 재일교포 플루티스트 김창국(도쿄예대 교수)씨의 연주로 플루트 독주를 위한 '연습곡'이 초연됐다. 88년 휴전선상에서 민족합동음악축전을 열자고 남북한 정부에 공식 제안한 것도 도쿄에서다. 윤씨의 75회 생일 기념 음악회가 92년 도쿄에서 열렸고 이듬해 '화염 속의 천사''에필로그'가 도쿄에서 초연됐다. 베를린 국립음대 교수 시절엔 후지타 마사노리, 오무라 데쓰야 등 일본인 제자를 가르쳤다.

마쓰시타 교수는 "'과거 항일투쟁을 했지만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점에서 일본인을 사랑한다'던 윤 선생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며 "동양인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라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자들에게 현대음악의 정신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윤이상 선생의 작품을 꼭 분석.연주해서 느껴보라고 권한다"고 덧붙였다.

윤이상 평화음악축전은 19일 서울, 10월 14일 독일 베를린, 10월 16일 뮌헨, 20일 평양으로 이어진다.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윤이상의'실내 교향곡 제1번''현(絃)을 위한 융단', 첼로와 오보에, 현악합주를 위한'2중 협주곡'등 모두 윤 선생이 칠순을 맞던 1987년에 작곡한 작품을 들려준다.

도쿄=글.사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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