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5년 남은 손지열 중앙선관위장 전격 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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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말이 없다. 공보관에게 물어보라. 죄송하다."

임기를 5년 넘게 남겨둔 손지열(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3일 전격 사의를 표했다. 그는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곤혹스러운 듯 이렇게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위원장 임기는 6년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손 위원장이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관위원장을 비상근에서 상임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선관위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인물이 선관위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 손 위원장이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그의 사의 배경을 두고 열린우리당과의 마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은 그래서 나왔다.

관례적으로 중앙선관위원장은 9명의 선관위원 중 대법원장이 지명한 3인 중 대법관이 선임됐다. 그래서 대법관 임기가 다하면 선관위원장 자리를 내놓곤 했다.

손 위원장은 7월 대법관 임기가 만료됐지만 위원장 자리는 유지해 왔다. 비상근 명예직인 선관위원장을 상임직화하면 손 위원장에게 이 자리를 계속 맡기겠다는 선관위원들의 내부적 약속 때문이었다. 헌법상 위원장은 선관위원의 호선으로 뽑게 돼 있다(제114조 2항).

?열린우리당 법사위원들 반대=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3부 요인.헌법기관장을 초청해 만찬을 했다. 그때 참석자들은 "선관위의 업무가 급증하고 있어 현재 비상임직인 중앙선관위원장을 상임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된 선관위법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인 국회 행자위원회는 통과했으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본회의 처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열린우리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지난주 "선관위법 개정안은 선관위원장의 헌법적 지위 문제 등에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사실상 법안 처리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당내에선 선관위가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불리한 단속을 했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이 일부 있어 왔다. 6월 29일 열린 법사위 소위에서 열린우리당의 이상민 의원은 "(선관위법 개정안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며 "그럴 필요성이 있으면 손지열 위원장이 그만두고 다음 중앙선관위원장부터 하면 된다"며 반대했다. 열린우리당의 다른 법사위원은 "열린우리당이 이 법안에 대해 반대한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부분 때문이지 위원장 개인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 손지열 선관위원장=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시 9회로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해 ▶서울고법 부장판사▶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거쳤다. 2000년 7월 대법관에 임명됐으며 지난해 12월 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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