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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중국, 경제도 공정(工程) 중? 세계 M&A 괴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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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 내 앞마당은 지키되 남의 텃밭은 침범하라'.

'동북 공정' '백두산 공정'에 이어 중국이 '경제 공정'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외국 자본을 빨아들이기만 했던 중국이 최근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것이다.

최근 중국 M&A의 특징은 외국인의 자국 기업의 인수는 엄격히 규제하되 해외 기업은 무차별적으로 사냥한다는 것. 이는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과 중국 정부의 위안화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은 점점 높아지는 위안화 절상 압력을 피하기 위해 달러가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는 규제하고 중국 기업의 각종 해외투자는 완화할 계획이다.

한국은행도 10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해외투자가 정부 지원자금의 무분별한 사용, 중국 영향력 확대에 대한 서방의 경계 확산 등 문제점을 낳고 있다"며 "그러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으로 중국의 해외투자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 중국 보호주의 고개 드나=올 들어 중국 M&A 시장에서 최대 논란거리는 미국 사모펀드 칼라일에 의한 중국 최대 중장비 업체 쉬궁(徐工) 인수 건이었다. 칼라일은 쉬궁 자회사 지분 85%를 인수하기로 했지만 알짜 국가자산을 외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계약을 못 하고 있다.

프랑스 가정용품 업체인 SEB는 중국 최대 주방기구 업체인 저장(浙江)성 쑤보얼(蘇伯爾) 인수에 나섰지만, 중국 회사들이 연명으로 이를 막아달라며 중국 정부에 요청하면서 벽에 막혔다. 중국 소매 유통업체들은 다국적 유통업체들의 국내 매장 설치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 로비까지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 자본의 블랙홀로 불리던 중국에서 다시 보호주의가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달 8일부터 시행 중인 '외국 투자자의 중국기업 M&A' 규정도 이런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외국 투자자가 중국 회사를 M&A하는 경우, 인수 대상 기업의 자본 중 외국인의 비율이 25%를 넘어야 가능하도록 못 박았다. 아울러 외국자본이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중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중국의 유명 상표, 전통산업을 인수할 경우엔 반드시 상무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신설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최근 경제 과열을 막는다며 외국기업에 대해 ▶법인세율 대폭 인상 ▶부동산 매입 제한 등 각종 규제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금융업 제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 감소했다.

◆ 새로운 자본수출국으로 부상하는 중국=반대로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는 크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대외직접투자(금융업 제외)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급증, 2004년엔 전년보다 93% 늘어난 55억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엔 122억 달러로 처음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해외 기업에 투자하거나 사들인 중국 기업 수도 급증, 지난해 말 현재 6426개사에 달한다. 투자 방식도 새로 공장을 설립하는 것보다 M&A나 전략적 제휴를 선호하고 있다. 중국에 의한 역대 해외기업 M&A 10위 중 8건은 2004년 이후 발생했다.

최근 중국 해외 M&A의 화두는 바로 핵심기술 습득과 에너지 자원 확보다. 물론 이달 중 1조 달러 돌파가 유력한 압도적인 세계 1위의 외환보유액이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 "급히 먹다 소화불량" 지적도=이같은 중국의 부상은 해외 M&A 시장에서 적잖은 문제도 낳고 있다. 캐나다 석유회사 페트로카자흐스탄 인수가 그 예다. 중국은 이 회사 인수에 시장 예상가격보다 크게 높은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었다. 세계의 유전을 싹쓸이, 원자재 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통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M&A를 통해 일시에 첨단기술을 사들이겠다는 과욕도 문제다. 한국의 하이닉스 반도체 LCD부문(현 비오이하이디스)을 인수한 중국 비오이 그룹은 추가 자금지원 조건으로 첨단기술 이전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역시 중국 회사에 인수된 쌍용자동차는 노사 갈등으로, 게임업체 액토즈소프트는 영업 부진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삼보컴퓨터 인수에 레노버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중국 기업의 해외 M&A가 운영 노하우 부족 등으로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지적했다. 세계 시장 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던 중국 롄샹의 IBM PC사업부문 인수는 물론 중국 가전업체 TCL에 의한 미국 TV 메이커 RCA와 프랑스 톰슨 인수도 시너지 효과는커녕 모두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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