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당국 왜 허둥대나/고교평준화 개선은 신중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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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교평준화제도의 문제점과 8학군 과열선호에 대한 대통령의 개선 지시가 내려진 열흘만에 문교부가 밝힌 개선방향은 보도마다 제각각이어서 도대체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평준화의 원칙은 고수하되 입시부활은 지방의 제한된 지역에 국한해 서서히 시행한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6대 도시에 내년부터 2,3개의 사립고에 입시 부활을 선별적으로 허용하고 특히 서울의 경우 현행 9학군제를 4,5개 광역학군으로 조정해 복수지원을 한다는 구체안까지 등장하고 있다.
어느쪽 보도가 더 정확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왜 이토록 전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교육정책의 기본골격을 두고 문교당국이 정반대의 엇갈린 보도를 흘리고 있는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적시해서 지시한 사항이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개선을 위한 신중한 검토로서가 아니라 지시 실행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평준화정책은 학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고교입시를 부활해야 한다. 8학군은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시키고 부동산 투기 열풍을 일으키기 때문에 해제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적 지시사항으로 문교당국은 받아들이고 있다. 검토의 대상이 아니라 아예 정책의 방향으로 잡고 있다.
지시된 방향으로 밀고 나가자니 평준화정책을 지지하는 쪽의 여론이 두렵고 8학군내 학부모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형편이니 상반되는 두 정책을 흘려 여론의 향방을 떠보려는 저의가 들여다 보인다.
물론 문교당국은 이처럼 엇갈린 언론의 보도가 언론사들간의 과잉 취재경쟁이 빚은 결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교육체제의 기본골격을 뒤흔들 사안들을 내부의 종합된 의견이나 방향의 조정도 없이 함부로 흘려 정책방향에 혼선을 빚게 한다면 그보다 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가 지적해 왔듯,교육의 수월성은 평준화의 부분적 보완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문교당국도 그 원칙을 고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고교입시 부활을 극히 제한된 지역의 소수학교를 선정해 실험적으로 운용해본 다음 그 부작용을 보완하면서 서서히 확대해 나가는 방향을 택하면 될 것이다.
그러한 기본노선도 확정치 않은 채 「6대 도시 내년부터 부분 입시부활」이니,8학군 폐지니 하는 충격적 조처를 아무런 토의나 여과를 거치지 않은 채 흘려보낸다면 애초의 개선 방향마저도 갈길을 잃어버리고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게다가 문교당국은 4월까지 시안마련,6월까지 제도확정을 거듭해서 천명하고 있다. 개선의 기본방향,입시부활의 상한선과 하한선도 정하지 못한 채 무엇으로 6월까지 제도를 확정짓겠다는지,또 왜 굳이 6월을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의 교육개선 지시사항을 개선방향 모색의 시발점으로 삼아 여론의 합의과정을 거쳐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순리임에도 불구하고 지시에 묶여 부랴부랴 서둘러 쫓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고교평준화 개선과 같은 교육정책의 기본을 손질하는 거대한 작업은 문교당국의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배려 속에서 연구되고 검토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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