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주체가 되는 체육(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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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몇몇 운동선수 육성이나 구경거리 경기에 치중해온 종래의 체육정책을 지양하고 국민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올해 주요업무로 삼겠다는 체육부의 계획은 그 시행여부가 매우 주목된다. 이른바 「호돌이 계획」으로 명명된 이 계획은 올해부터 3년 동안 국민 누구나가 손쉽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80년대 국내 스포츠를 얼핏 살펴보면 과연 스포츠 왕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려한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 규모의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기타 수많은 국제경기를 유치하거나 이에 참여했다. 야구와 축구 등 프로팀이 생겨 연중행사를 펼침으로써 온 국민이 스포츠열기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게 했다.
1년 3백65일 내내 각종 경기가 벌어지고 TV는 이를 중계하여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 잠실의 올림픽공원을 비롯,전국 대도시에 거대한 체육시설이 속속 세워졌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으로는 화려하고 거창한 행사와 시설들이 국민의 체력향상이라는 스포츠 본연의 목적과 성과를 달성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TV의 스포츠 중계는 스포츠를 관전오락쯤으로 여기도록 인식을 왜곡시키는 데 기여했고,국민이 스스로 운동을 할 시간과 의욕을 감소시키는 역기능마저 발생시켰다.
반면 국민 개개인이 체력을 단련하고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공공 스포츠시설에 대한 투자는 전무에 가깝고 전문 사회체육 지도자 한명 길러내지 않았다. 전국을 통틀어도 공설운동장이나 체육관은 겨우 각각 1백여개뿐이다.
4천만 인구로 따지면 40만명당 한개 꼴인,한심하기 짝이 없는 실태다. 이웃 일본과만 비교해도 운동장은 20분의 1,체육관은 50분의 1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국민체력의 퇴보를 보여주는 통계로 입증된다. 지난 87년 공업진흥청이 발표한 국민표본체위조사 결과를 보면 몸무게나 키는 훨씬 늘어났으나 가슴둘레는 줄어들었으며,특히 30세 이상 성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86년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시내 초ㆍ중ㆍ고교 남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5년전보다 체위는 좋아졌으나 체력테스트에서는 훨씬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수준 향상으로 영양상태는 좋아졌으나 운동부족으로 체력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전반적인 국민 체력의 향상에 체육정책이 치중돼야 한다. 이런 목적에 알맞는 스포츠 종목의 보급과 생활체육지도자의 육성은 물론이지만 우선 시급한 것이 시설과 설비의 확충이다. 최소한 전국적으로 동단위에 하나씩은 작은 규모나마 대중 종합체육시설을 설치해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체력단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산이 문제가 되겠지만 집행의 우선순위를 국민생활체육에 두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서울평화상 따위에 드는 비용을 전용하거나 절감하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현재 문을 닫아걸고 시설보호에만 치중하고 있는 각종 기존 스포츠 시설들도 국민에게 전면 개방해야 한다. 이런 생활체육의 활성화는 청소년문제 해결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제 「보는 체육」을 지양하고 「하는 체육」을 육성하는 데 정책과 투자가 집중돼야 한다.
당국자는 체육이란 스포츠 스타 배출보다는 전 국민의 체력향상과 건전한 경쟁정신을 함양하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음을 정책 우선순위 설정의 바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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