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여당의 헛발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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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정면충돌한 '문재인 파동'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결과만 보자면 노 대통령은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고, 여당은 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을 막았으니 '윈-윈 게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평가는 여당의 패배, 노 대통령의 승리라고 본다. "김근태 당의장이 혼나고 나왔다"는 말까지 나온다.

6일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오찬 대화 내용을 보자. "김 의장은 왜 그렇게 언론에 공개적으로 얘기합니까" "김 의장은 나하고 계급장 떼고 맞붙자고 했죠"라는 노 대통령의 말은 김 의장에 대한 공개 비난이었다. "2002년 대선 때 도와준 선대위원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김 의장을 면전에서 비꼰 것이다. "대선에서 나를 끌어내리고 정몽준 의원을 후보로 영입하려 하지 않았느냐" "그런 당신을 내가 복지부 장관으로 기용해 줬다. 또 지금은 내가 만든 당에서 의장까지 하고 있으면서 내게 이럴 염치가 있느냐"는 게 노 대통령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나온 4개 합의사항이란 것도 그렇다. "당이 조언과 건의를 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는 문 전 수석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채 청와대를 나서야 했고, 발표가 나올 때까지 마음 졸이며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역전극이 벌어지게 된 것은 타깃을 잘못 설정한 탓이 크다. 김 의장은 "문 전 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가장 적합하고 훌륭한 인물"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일반적 평가도 대체로 그러하다. 심지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문재인은 괜찮은 사람 같다"고 말할 정도다. 인물에 하자가 없는데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명에 반대한 건 명분이 약했다.

그런데도 왜 여당이 야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까.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의원은 "사(私)가 끼어들었다"고 했다. 그 '사'가 뭔가. "선거 패배와 김병준 교육부총리 낙마로 대통령이 잔뜩 위축된 이때 밀어붙여서 확실히 당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부산 세력에 대한 호남 세력의 반발도 있었다. "호남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데 단물은 부산이 다 빨아먹는다"는 불만이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문 전 수석이 대선 후보군에 포함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었었다. 당시 노 변호사를 재야운동에 소개하고, 형편이 어려울 때 월 100만원씩 통장에 넣어주고, 1988년 총선 때 송기인 신부를 통해 노 변호사를 YS에게 소개해준 게 문 전 수석이다. 양자를 잘 아는 사람은 "이병완씨를 비서관-홍보수석-비서실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문 전 수석은 그 자리에 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은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판단이기에 문 전 수석의 앞날을 위해 그런 직책을 피하게 해줬다는 것이다. 그럴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특수하다. 그래서 "또 하나의 '영남 출신 여당 대선 후보'를 키우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여권 내부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권력투쟁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국민의 뜻과 명분에 합당해야 한다. 그러나 여당은 이번 문재인 파동에서 정치역학에 몰두한 나머지 국민과 함께하지 못했다. 여당은 문재인 반대에 올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최근 문화부 차관 경질에서 드러났듯 청와대 386의 인사 전횡을 문제 삼는 게 나았다. 그랬다면 국민과 공무원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겨냥이 잘못됐으니 헛발질을 했고, 그 결과 노 대통령에게 공을 빼앗겼다.

여당이 살길은 무조건 대통령과 정면대립하는 데 있지 않다. 정부에 미흡한 부분을 채우고 정부가 잘못 가지 않도록 바로잡을 수 있는 힘과 원칙,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선장을 외부에서 구하건, 내부에서 찾건 모함 '대한민국호'가 난파한 뒤에는 아무 소용없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