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硏 ‘비핵화 지수’, 남북관계 악화하자 돌연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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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리동의 한국국방연구원 본관 외관. 중앙포토

서울 청량리동의 한국국방연구원 본관 외관. 중앙포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2018년부터 매년 산출해 청와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제공하던 ‘비핵화 지수’를 남북관계가 악화한 지난해 11월부터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IDA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안보환경 급변 및 새로운 안보환경에 대응한다’는 취지에서 그해 7월부터 ‘비핵화·평화체제 이행 여건을 포함한 안보환경 평가 지수’를 국방현안보고서로 산출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정부 및 군에 대한 정책지원 강화의 목적으로 연중 수시로 발생하는 국방현안에 대해 전문가의 정책제언을 실시간 혹은 준 실시간으로 고위 정책자에게 제공하는 소분량 비공개 보고서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부, 각 군 등 주요부서의 과장급 이상에 한정해 배포된다. 2018년에는 11건, 2019년에는 10건이 발간됐다.

2020년에도 10건의 보고서가 발간됐다. 이때부터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평가지수, 북한의 비핵화 및 대남정책 평가지수, 중국·일본·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 평가지수를 각각 평가한 후 이를 종합한 한반도 안보·국방 여건 종합지수로 변경해 발간했다.

그런데 그해 11월부터 돌연 보고서 발간이 중단됐다. 한 의원은 “지수 추이를 보면 2020년 하반기 들어 비핵화 지수 하락 폭이 가팔라졌는데 이러한 원인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018~2019년은 종합 지수의 완만한 상승과 정체가 나타났던 것과 대비된다.

이에 대해 KIDA는 “실제로 가장 높게 평가됐던 2019년 2월의 비핵화 지수(60.6점)보다 2010년 10월의 비핵화 지수는 반 정도 수준(34.3점)이었다”며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연구의 신뢰성이 불충분하다’는 판단으로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기호 의원은 “국방부와 KIDA가 청와대 등 현 정부 고위 결정권자들의 입맛에 맞춰 비핵화 지수 산출을 시작했다가, 그러한 수치가 더는 나오지 않자 이들의 심기가 불편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공무원 피격 사망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고 비핵화 지수가 상승할 기미가 없자 평가를 중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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