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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원의 ‘혁신경쟁법안’ 우리 국회도 참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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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패권전쟁 승패가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고 보고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 의회도 중국 견제 법안 마련에 적극적이다. 미 의회가 법안을 제정하면 그 효력이 대통령 임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다. 미 상원은 지난 6월 8일 여러 개의 세부법안으로 구성된 ‘혁신경쟁법안(The 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USICA)’을 통과시켰다. 동 법안은 하원에서 다소 수정될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하원의 지지를 받아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 과학기술 패권전쟁 정공법 택해 #학술연구·기술개발이 혁신의 기본 #연구정보 보안, STEM교육 중요 #국회, 연구혁신 생태계 구축해야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유지해 왔다. 그 비결은 대학에서의 학술연구, 정부의 연구비 지원, 벤처캐피탈의 활성화, 자유로운 시장경쟁 등이 효율적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했다는 데 있다. 이번에 상원에서 통과된 ‘혁신경쟁법안’의 핵심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미국 특유의 혁신을 통해 반도체 및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정공법만이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동 법안은 내년부터 5년간 2500억 달러(중국은 비슷한 기간 1조 4000억 달러)의 재정지원계획과 분야별로 목표달성을 위한 프로그램, 정책, 제도, 조치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세부법안의 하나인 ‘미국 반도체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은 기본적으로 제조능력의 혁신 및 확대를 통해 미국의 반도체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에 대한 연구개발과 제조, 조립, 검수, 포장 등과 관련된 시설의 신축 등에 대해 향후 5년간 52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가장 큰 규모의 재정지원계획이 포함된 세부법안은 ‘무한 프론티어 법안(Endless Frontier Act)’이다. 동 세부법안은 인공지능(AI), 양자정보과학(quantum information science) 등 전략 분야에 향후 5년간 1200억 달러를 투입하여 미국이 차세대 과학기술분야의 선두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립과학재단(NSF)의 예산을 확대하고 내부에 ‘기술혁신국’을 신설하여 NSF의 역할을 강화하였다. NSF는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개발 자금지원, 학술연구를 통해 개발된 기술의 이전 및 상업화, 지식재산권 보호, 인력확보를 위한 장학금 제도 운용 등을 전담하며 나아가 연구개발 프로젝트와 자금지출의 중복을 방지하기 위한 조정기능도 수행한다.

또 다른 세부법안인 ‘전략적 경쟁 법안(Strategic Competition Act)’과 ‘중국 도전 대응 법안(Meeting the China Challenge Act)’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안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심으로 기술, 국방, 인프라구축, 공급망 등 여러 분야에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또한 중국이 미국 대학이나 학자들에게 연구용역이나 연구비 제공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재산권과 관련해서 부당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로 하여금 이와 관련된 사항들을 조사하여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혁신경쟁법안’의 여타 세부법안에는 미국에 사이버안보 및 소프트웨어 분야의 전문가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과 함께 모든 주(State)로 하여금 초중고 및 대학에서 새로운 컴퓨터공학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획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적인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을 확대하고 이를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을 연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도 주문하고 있다.

최근 우리 국회도 ‘국가핵심전략산업 특별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위에서 살펴본 미 상원의 ‘혁신경쟁법안’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혁신경쟁법안’이 혁신의 기본을 대학과 연구소의 학술연구 및 기술개발 활성화에 두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혁신에 참여하는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 간에 프로젝트와 재정지출 중복을 방지하는 조정 장치의 마련도 중요해 보인다. 나아가 고등학교부터 STEM 교육과정을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고 사이버 공격, 지식재산권 및 연구결과 불법탈취 등 연구 관련 정보의 보안을 강화하는 장치의 도입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렇듯 ‘국가 핵심전략산업 특별법’은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과학기술분야의 미래를 대비하는 연구혁신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200개 가까운 종합대학이 있고 25개의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원이 있으며 한국연구재단과 기초과학연구원도 있다. 이번 특별법이 이러한 기존 조직을 새롭게 구축하는 연구혁신 생태계에서 어떻게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도 함께 제시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