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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출범 20주년 만에 또 폐지론 자초한 여성가족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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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 뜨겁다. 여가부의 영문명은 ‘양성평등 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다. 정부조직법 제41조에 의하면 여성정책, 여성의 권익 증진, 청소년 및 가족 정책 업무 등을 관장하게 돼 있다. 양성평등, 청소년 및 가족 정책,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방지 및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권력형 성범죄 미온 대응이 ‘원죄’ #별도 부처 존재할 이유 보여줘야

과거를 잠시 돌아보자. 1987년 개정 헌법 제34조 3항에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하여 국가는 노력하여야 한다’ 고 규정한 이후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독립된 부처 설립 논의가 활발해졌다.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하고, 2001년 1월에는 여성부가 신설됐고, 2005년 여성가족부로 명칭을 변경한다. 하지만 업무 중첩 지적에 따라 여성부와 보건복지가족부로 변경되더디 2010년 지금의 여성가족부 체제로 바뀌었다.

여가부는 왜 지금 존폐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을까.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가부의 무능력에 근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비대해진 정부 조직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권력자들의 성폭력 범죄가 잇따를 때 여가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것이 비판을 자초했다.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 학습할 기회”라던 이정옥 전 장관의 기괴한 발언 등이 존폐 논란을 부른 측면이 없지 않다.

여가부는 국민에게 단체로 페미니즘을 학습시키는 부처가 아니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인정한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다. 2030 남성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균형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어떤 역할을 했길래 존폐 논란이 재차 불붙었는지 자성부터 해야 한다. 여가부가 특수한 집단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비효율적 조직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여가부의 업무는 양성평등과 가족정책 구현이다. 그런데 이런 기능은 대부분 복지 업무와 중첩되는 것부터 문제다. 일례로 가정 돌봄은 여가부, 기관 돌봄은 복지부가 맡는다. 아동은 복지부, 청소년은 여가부 업무라는 칸막이가 초래하는 비효율부터 해결해야 한다. 가족 업무와 양성평등 업무를 왜 여가부라는 별도 부처가 맡아야 하는지 정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양성평등 구현은 언제 달성할 수 있을지 속단하기 어렵기에 지속해서 추구해야 할 과제다. 여가부가 주도하고 있는 할당제, 여성 대표성 강화 등의 양성평등 정책의 존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기혼 여성의 취업률은 남성보다 더 감소했고 실업률은 남성보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여성의 육아 부담을 그 이유로 지목했다. 남성의 육아 휴직 비율 또한 30%를 넘지 못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남성은 11%, 여성은 26.1%를 차지한다. 이러한 지표들은 아직 우리가 양성이 평등한 사회로 진입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여가부가 지금처럼 무능력해서야 이처럼 심각한 불평등 상황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미 교육부·고용노동부 등 많은 행정 부처에는 ‘양성평등(정책) 담당관’을 두고 모든 행정 및 예산에서 여성을 고려하고 있다.

여가부 존폐는 정쟁이 아닌 상식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 상식은 공정과 형평에 대한 실질적 보장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상징성만으로 평등이 구현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라도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역설적으로 여가부가 없어도 양성평등 사회가 하루 속히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것이 여가부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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