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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초당파적 ‘통일 국민협약’ 도출을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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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초당파적 시민단체인 ‘통일 비전 시민회의’ 주최로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통일 국민협약안 채택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8회에 걸쳐 열렸다. 통일 국민협약이란 남북 및 남남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바람직한 한반도의 미래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사회 구성원과 국회 및 정부가 합의하고 일관성 있게 실천할 내용을 합의문 형식으로 공식화한 일종의 사회협약이다. 그동안 권역별로 선정된 100명의 시민 참여단이 분임·전체 토의와 숙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한반도 미래상과 그 실현 과정 및 방법을 담은 통일 국민협약문(전문과 본문 46개 문장)을 도출했다.

남북·남남 갈등 등 해결 방안 모색 #투명·공정한 의견 수렴 의미 있어

사회적 대화라는 것이 우리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유럽에는 오스트리아의 임금·물가 협약(1951), 정치 교육과 관련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1976), 네덜란드 노사정이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1982), 아일랜드의 시민의회 모델(2016년 이후) 등에서 보듯 성공 사례가 많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통일 문제는 지나치게 정쟁화돼왔고, 의견 차이와 갈등을 넘어 통일에 대해 건설적 논의와 합의를 이뤄본 경험이 부족했다. 진영 논리에 빠져 반대 측과의 만남과 대화조차 꺼리기도 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북정책의 밀실주의와 일방주의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통일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의 지평과 수준에 직결돼 있다. 따라서 더는 시민을 정책 홍보와 전달의 대상으로만 취급해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통일 문제 및 남북 관계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국민의 참여와 소통 기회를 마련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플랫폼 역할을 제공한다.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통일 역량의 결집에도 나름대로 기여하고 대북·통일 정책 추진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이번에 참여한 시민들은 “젊은 세대의 날카로운 논리와 주관, 이전 세대의 지혜와 통찰을 발견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게 됐다”라거나 “우리의 오래된 숙제인 통일에 대해 상당히 공통된 생각을 품고 함께 살아왔음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는 사회적 대화의 유용성을 뒷받침해주는 긍정적 반응이라 볼 수 있다.

사회적 대화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평화와 통일에 관한 더 좋은 의제를 발굴하고 대화와 소통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질의 기본 정보 자료를 사전에 배포해 시민들이 생산적이고 내실 있는 대화를 진행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전문가 발제 내용도 더 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사회적 협약안 도출이란 결과에만 급급할 게 아니다. 합의를 이루는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며 수렴된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화 참여자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통일 국민협약이란 결론 도출에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대화의 상시적 제도화, 시민 참여 범위 확대, 통일 국민협약안의 도출을 위한 합의 모델의 보완 및 완성, 통일 교육 과정에 통일 국민협약안 반영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가 대화에 그치지 않고 도출된 결론이 법과 제도로 구체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 풍토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모색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사회적 협약안을 통일정책 과정에 투영하는 메커니즘 구축과 관련된 매뉴얼 마련도 검토해야 한다.

앞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란 새로운 길을 가는데 시민·정부·국회는 물론 다른 이해관계자 그룹이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평화의 통일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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