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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남은 때리고 엄마는 죽을때까지 외면…29일 신생아 비극

중앙일보

입력

아동학대. [중앙포토]

아동학대.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3시 30분쯤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병원에 한 아기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태어난 지 29일 된 남아였다. 병원에서 즉각 치료했지만, 머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기는 곧 뇌사 상태에 빠졌고 다음날 오후 8시35분 숨졌다.

[사건추적]

아기의 얼굴에서 멍자국이 발견됐다. 치명적인 외상성 머리 부위 손상이 뇌출혈 등을 일으켜 아이가 사망한 것이라는 부검 결과가 나왔다.

29일 된 아이 숨 헐떡여도 방치한 엄마 

아기 어머니인 A씨(24)와 동거남(23)은 아동 학대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아기를 돌보다 바닥에 떨어트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포천시의 원룸 주변 사람들의 진술은 달랐다. "아기가 우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반복적으로 화내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경찰의 추궁에 이들은 아기를 학대한 사실을 털어놨다. 그리고 아기가 병원에 실려 가기 전 숨을 헐떡이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는데도 40여분을 방치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아기 엄마는 아기가 숨을 쉬지 않자 그제서야 119에 신고를 했다.

수사 당국은 아기를 폭행한 동거남을 살인 혐의로 구속했고 A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신생아 발. 사진은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신생아 발. 사진은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두 사람의 판결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4월부터 교제했다. 하지만 A씨는 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9월 동거남이 사는 경기도 포천시의 한 원룸에서 살기 시작한 A씨는 아이를 낳으면 입양 보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대천문’ 안 닫힌 아기 머리 때린 건 살인죄

그해 11월 29일 남자 아기가 태어났다. 하지만, 당장 입양 보낼 형편이 안 됐다. "아기에게 심장 잡음이 있어 초음파 검사가 끝나야 입양기관으로 보낼 수 있다"는 입양 기관의 말에 이들은 당분간 아기를 데리고 있기로 했다. 그러나, 비정한 남녀는 그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

동거남은 아기가 집으로 온 지 12일만인 지난해 12월 19일부터 폭행을 시작했다. 아기 우는 소리에 새벽에 잠이 깨면 아기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퇴근하고도 운다는 이유로 머리를 수회 때렸다. 폭력은 이틀 1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생후 1개월이 되지 않은 신생아는 머리뼈 부위 두께가 평균 2~3㎜(성인 평균 7㎜)에 불과하다고 한다. 머리뼈가 딱딱하지 않아 쉽게 변형된다는 건 초보 부모들은 잘 아는 육아 정보다. 머리 앞쪽 위 ‘대천문’이 닫히기 시작하는 생후 12개월 전까지는 머리 부위에 충격을 받으면 사망할 가능성도 크다.

친모는 학대 발각될까 봐 아기 방치

동거남은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해 고의는 없었고, 사망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아기 엄마는 재판 과정에서 "동거남이 아기를 약하게 때렸다고 하는데 '탁' 소리가 날 정도여서 누워있는 아기의 뒤통수가 눌리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때리지 말라'고 하면 '입양할 건데 정 주지 말아라'고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엄마도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동거남이 아기를 학대한 사실이 발각될까 봐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 이미지.연합뉴스

법원 이미지.연합뉴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1부(이문세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동거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아기 엄마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법원은 동거남에게는 7년간, A씨에게는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하고 A씨에겐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40시간을 이수하도록 했다.

법원 "죄질 나쁘다" 친모 법정 구속

재판부는 A씨에게 "피해자의 친모로서 양육·보호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데도 동거남의 반복적인 폭행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인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해 죄질이 매우 나쁘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동거남에 대해서도 "생후 1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생아의 머리 부위를 1주일 이상 반복적으로 때려 피해자의 생명을 빼앗았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또 "동거남은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피해자를 떨어트렸다' '학대한 사실이 없다. 아기를 너무 예뻐했다'고 거짓 진술을 하고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도 폭행 정도를 축소하려고 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채 살해된 피해자의 생명은 어떤 방법으로 되돌릴 수도, 보상할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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