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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잘 팔린다는데…부품업계는 ‘산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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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판매는 올해 4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32.4% 증가했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로 회복세가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 부두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판매는 올해 4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32.4% 증가했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로 회복세가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 부두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동차 부품 도금업을 하는 A사는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사다. A사의 물량을 1차 협력사가 받아간 뒤 재가공을 거쳐 현대차에 납품하는 구조다.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2차나 3차 협력사는 ‘을’ 또는 ‘병’으로 불린다. A사의 박모 대표는 “구리 가격이 지난해 말보다 50% 이상 뛰었다”며 “원가 부담은 가중했지만 고객사(1차 협력사)에 제품 단가를 올려달라는 말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값·인력난·전기차 ‘3중고’ #강판·구리값 급등, 원가 부담 큰데 #단가 인상 대신 납품가 인하 압박 #반도체 대란에 납품 물량도 변덕 #고급인력 없어 전기차 전환 무대책

박 대표는 “올해 초까지는 현대차·기아에 공급하는 물량이 늘어나 매출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2분기 들어 차량용 반도체 부족의 영향으로 현대차·기아의 발주 물량이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생산직 인력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렵다. 특히 고졸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 제조업 생산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전보다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110개 주요 자동차 부품사 영업이익률

110개 주요 자동차 부품사 영업이익률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우선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부품 물량이 줄었다.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인력난도 부품업계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자동차 산업의 큰 흐름도 변화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부품업계의 고민은 이만저만한 수준이 아니다.

올해 들어 자동차용 냉연강판과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은 급격히 뛰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냉연강판 유통 가격은 t당 1117달러로 올랐다. 지난해 5월(713달러)과 비교하면 57% 비싸졌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 가격은 이달 들어 t당 1만226달러로 상승했다. 지난해 5월(5223달러)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최근 2년 글로벌 구리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2년 글로벌 구리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부품업체들은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납품 가격을 올려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부품 단가를 인하하라는 압력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한다. 부품 도장업을 하는 B사의 김모 대표는 “고객사(1차 협력사와 완성차 업체)에선 오히려 제품 가격을 조정(인하)하려 한다”며 “완성차나 1차 협력사는 고액 연봉 등 높은 고정비를 만회하기 위해 하청업체의 납품가를 낮추려는 관행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품업계의 인력난이 원자재 가격 상승보다 장기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컨설팅 업체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의 이문호 소장은 “전기차로 전환기를 맞아 문제(인력난)가 더 깊어졌다. 지방자치단체·대기업이 함께 학생들을 현장에 맞는 전문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2년 글로벌 강판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2년 글로벌 강판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부품업체들은 전기차 시대에 맞춰 주력 제품의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 없다. 따라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종류와 개수는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확 줄어든다. 예컨대 현대차 아이오닉5(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 덩어리’(UPG)는 360개라고 자동차 업계는 보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약 500개)의 72% 수준이다.

부품업계는 전기차에 맞는 부품을 개발하고 인력을 충원해야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 전체에 박사급 연구 인력은 1000여 명이고 대부분 대기업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으로선 고임금 인력을 데려오거나 연구개발 시설에 투자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대체로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자동차 부품사 110곳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조사한 결과다. 300인 미만 중소 부품업체의 지난해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1.3%였다. 1000원어치를 팔면 13원을 남겼다는 의미다. 2019년(2%)과 비교하면 0.7%포인트 낮아졌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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