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건설 현장의 일본식 용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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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근 소위 ‘함바왕’이라 불리는 사람이 자신이 뇌물을 준 유력 인사들을 고소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왜 ‘함바왕’이라 불리는 것일까?

‘함바’는 건설 현장에 가건물을 지어 놓고 인부를 상대로 운영하는 식당을 가리키는 말인 ‘함바집’ 또는 ‘함바식당’을 줄여 부르는 것이다. ‘함바왕’은 ‘함바’를 전문적으로 많이 운영한 사람이란 의미에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함바’는 순우리말일까? 언뜻 그렇게 보일 수 있으나 공사장 등에 있는 노무자 합숙소란 뜻의 일본어 ‘飯場(はんば)’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사장 임시식당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현장식당’으로 쓰도록 권하고 있다.

이 밖에도 건설 현장에서는 일본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노가다’ ‘시다’ ‘시마이’ ‘단도리’ 등은 일반인도 꽤 들어본 말이다. 각각 ‘현장근로자’ ‘보조원’ ‘마무리’ ‘채비’를 뜻하는 일본어다.

‘오야지’ ‘와쿠’ ‘공구리’ ‘가쿠목’ ‘아시바’ 등도 있다. 각각 ‘책임자’ ‘틀’ ‘콘크리트’ ‘각목’ ‘발판’을 의미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기리바리’ ‘노바시’ ‘덴조’ ‘가베’ 등도 있다. ‘버팀대’ ‘늘이기’ ‘천장’ ‘벽’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본식 표현이 두루 쓰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서양식 건축이 국내에 도입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관계기관과 건설회사 등이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해오고 있으나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도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 우리말로 바꾸는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운동을 벌여나간다면 더욱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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