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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피고, 짱뚱어 뛴다…봄이 갯벌에서 올라오는 이 섬

중앙일보

입력

신안 도초도 도락마을 제방에서 내려다본 도락염전의 모습.

신안 도초도 도락마을 제방에서 내려다본 도락염전의 모습.

봄은 꽃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바다에서도 온다. 이를테면 전남 신안의 섬에서는 봄이 갯벌에서 올라온다. 갯벌의 봄은 진달래 핀 산처럼 화사하지 않다. 대신 온갖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겨울잠에서 깬 짱뚱어가 갯벌에서 뛰어오르고, 새하얀 소금꽃이 피기 시작한다. 갯벌이 바빠지니 갯벌에 기대어 사는 어부와 염부도 바빠진다. 갯벌의 봄은 바쁘다. 그래서 더 역동적이다.

소금도 봄꽃

신안 비금도 대동염전. 날이 포근해진 덕에 소금꽃이 하얗게 피었다. 염부는 한낮동안 부지런히 소금을 거둔다. 비금도에서는 매년 4월 15일께 첫 천일염을 거둔다.

신안 비금도 대동염전. 날이 포근해진 덕에 소금꽃이 하얗게 피었다. 염부는 한낮동안 부지런히 소금을 거둔다. 비금도에서는 매년 4월 15일께 첫 천일염을 거둔다.

소금꽃이 맺혀야 봄이다. 염부에겐 오래된 진리다. 염부는 사계절 쉬지 않는다. 겨울이면 염전을 싹 다 뒤엎어 바닷물을 새로 댄다. 소금밭을 일구는 것이다. 첫 소금을 거두는 건 매년 4월 15일께다. 소금 농사는 대개 10월까지 이어진다. 창고에서 2~3년가량 간수를 뺀 소금이 전국으로 팔려가 김치가 되고 젓갈이 된다.

한반도의 염전 규모는 4139만㎡(약 1252만 평)에 이른다. 이 가운데 61.7%(2556만㎡)가 신안에 몰려 있다(2019년 해양수산부). 신안 천일염의 본향은 비금도다. 1947년 비금도 주민들이 갯벌에 돌로 제방을 쌓아 소금밭을 개척했다. 이후 이웃한 도초도를 비롯해 증도, 사랑도, 만자도 등으로 염전이 확산했다.

바닷물을 염전에 가둔 뒤, 결정지에서 소금이 되기까지는 대략 20일이 걸린다. 염부는 이 과정을 ‘소금이 온다’고 부른다. 대파(채염 기구)로 소금을 거두는 건 사람이지만, 자연의 힘 없이는 소금 결정이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이 있어야만 굵고 단단한 소금이 온다.

염전 바닥에 네모반듯한 소금꽃이 피었다. 날이 따뜻할수록 굵은 소금 결정을 맺는다.

염전 바닥에 네모반듯한 소금꽃이 피었다. 날이 따뜻할수록 굵은 소금 결정을 맺는다.

육지와 먼 비금도와 도초도의 천일염은 불순물이 적어 쓴맛이 적고 품질이 좋단다. 산지에선 요즘 천일염 한 포대(20㎏)에 2만5000원을 받는다. 도초도 ‘도락염전’의 채염 과정을 엿봤다. 배동출(67) 염부는 “저염식도 좋지만, 좋은 소금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파질(고무래로 소금을 긁어 모이는 일)은 점심께 시작해 해가 넘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느릿하고도 정성이 어린 노동이었다. 거울처럼 평평하고 투명한 염전 위로 하얀 소금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짱뚱어 뛰다

화려한 무늬의 비단짱뚱어. 신안 갯벌을 주름잡는 주인공이다.

화려한 무늬의 비단짱뚱어. 신안 갯벌을 주름잡는 주인공이다.

짱뚱어처럼 계절의 변화를 몸부림쳐 보여주는 갯것도 드물다. 짱뚱어는 눈이 툭 튀어나온 독특한 생김새만큼이나 별난 게 많은 어종이다. 몸길이가 약 18㎝로 아가미가 있지만, 갯벌 위에서 뛰어놀기를 더 좋아한다. 만조 때는 펄 속에 숨어 있다가, 간조가 되면 펄 밖으로 올라와 먹이 활동을 한다. 청정갯벌에서만 서식해, 갯벌 생태계의 지표종으로 통한다. 플랑크톤을 비롯해 영양소가 풍부한 증도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온화한 봄바람이 부는 요맘때가 겨울잠을 자던 짱뚱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다. 어렴풋하게 고개를 내미는 정도가 아니라, 갯벌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짝짓기철인 5월이면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 입을 쩍쩍 벌리고 힘 싸움 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갯벌 위를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암놈을 유혹하는 수놈도 흔하다.

한낮의 갯벌. 짱뚱어와 칠게·농게 햇볕을 맞으며 흙장난을 벌인다.

한낮의 갯벌. 짱뚱어와 칠게·농게 햇볕을 맞으며 흙장난을 벌인다.

증도 갯벌 위를 지나는 짱뚱어다리, 증도와 화도를 잇는 노두길, 암태도 추포대교 아래 갯벌이 짱뚱어를 관찰하기 좋은 명당이다. 짱뚱어는 보통 예민한 녀석이 아니다. 주변에서 조그마한 소음이나 움직임이 느껴지면 흙장난을 멈추고 펄 속으로 숨어버린다.

신안갯벌센터 오승민 주무관은 “기온이 높은 한낮에 많이 나온다. 작은 망원경을 챙겨 나오면 더 관찰이 쉽다”고 귀띔했다. 짱뚱어다리 옆 제방에서 잠복하기를 10여 분. 검지 손가락만 한 ‘말뚝망둑어’ 무리 사이로, 화려한 무늬의 등지느러미를 지닌 ‘비단짱뚱어’가 보였다. 자잘한 크기의 농게와 칠게도 꾸물꾸물 진군해 왔다. 저마다 몸짓이 분주하고 앙증맞았다.

입맛 돋우는 간재미초무침

막걸리식초를 곁들인 간재미초무침. 도초도의 대표적인 봄 음식이다.

막걸리식초를 곁들인 간재미초무침. 도초도의 대표적인 봄 음식이다.

신안은 1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온갖 해산물이 사철 올라온다. 섬마다 특산물도 제각각이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흑산도는 두말할 것 없는 홍어의 섬이다. 임자도는 민어, 지도는 병어, 홍도는 ‘열기’로도 불리는 불볼락이 유명하다.

이맘때는 도초도에서 나는 ‘간재미(정식 이름 : 홍어)’가 제철이다. 흑산도 홍어(정식 이름 : 참홍어)나 가오리와 닮았지만, 엄연히 다른 어종이다. 간재미는 길이가 50㎝ 남짓하고 몸통이 얇으면서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둥이가 둥그르스름해 입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흑산도 홍어와 확연히 구분된다. 간재미는 바위와 펄이 섞여 있는 도초도 앞에서 주로 서식한다. 뼈가 연해 통째 썰어서 먹으면 오독오독한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막걸리식초로 맛을 내는 간재미초무침도 맛이 각별하다.

펄에서 자란 낙지는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다. 연포탕과 낙지탕탕이가 가장 흔하다.

펄에서 자란 낙지는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다. 연포탕과 낙지탕탕이가 가장 흔하다.

갯벌에도 먹을 게 많다. 펄을 휘젓고 다니는 짱뚱어는 얼큰한 탕으로, 칠게는 그대로 갈아 칠게장으로 만들어 밥상에 올린다. 연포탕‧탕탕이‧물회 등으로 다양하게 즐기는 일명 ‘뻘낙지’도 빠질 수 없다. 지도 송도항이 신안에서 가장 큰 어판장이 서는 곳이다. 해산물 가게 24개가 줄지어 있다. 갓 구매한 생선을 대신 조리해주는 초장집이 2층에서 손님을 맞는다.

여행정보

신안군 지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안군 지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안군청이 있는 압해도가 신안 들머리다. 서울역을 기준으로 자동차로 4시간 거리다. 목포역에서는 15분이 걸린다. 신안은 크게 북부권(지도‧증도‧임자도), 중부권(압해도‧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 남부권(비금도‧도초도‧우이도‧하의도‧신의도), 흑산‧홍도권(흑산도‧홍도‧가거도)으로 나뉜다. 북부권과 중부권은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어 자동차로도 드나들 수 있다. 지난달 19일 임자대교(임자도~수도~지도, 5㎞) 개통으로 임자도와 지도‧증도가 도로로 연결됐다.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비금도와 도초도 역시 다리로 연결돼 있다. 비금도로 들어가는 배는 암태도 남강항에서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뜬다. 뱃길로 40분 거리다. 차량을 싣는 것도 가능하다. 선착장 주변으로 식당과 펜션이 모여 있다.

임자도~수도~지도로 이어지는 임자대교. 지난달 19일 정식 개통했다.

임자도~수도~지도로 이어지는 임자대교. 지난달 19일 정식 개통했다.

신안=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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