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권, 인도적 지원마저 정치화...주민 아닌 지도부 위해 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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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평양 시내 보통강 강변의 주택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평양 시내 보통강 강변의 주택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면 인도주의적 협력이 우선이라고 밝힌 가운데 유엔에서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주민이 아닌 지도부의 수요를 위해 전용하는 등 정치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념 코드 맞는 나라 지원만 수용”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 연례 보고서는 “두 회원국이 북한 정권의 경제적 운용 실패로 인해 야기된 결과들을 알 수 있는 분석들을 제출했다”며 이처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국가들은 “북한은 여전히 김씨 일가 체제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의료나 식량 안보 등 다른 국익보다 우선으로 여기고 있다”며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정치화했다(politicize)”고 지적했다. “북한은 노동당이 우선으로 여기는 지역에 대해서만,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체제에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들로부터만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고 있다”면서다. 또 “게다가 인도적 지원은 북한 지도부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용돼 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almost certainly). 이를 통해 외교적 고립과 경제 개혁 시도에서 비롯되는 압박을 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정부단체(NGO)들도 비슷한 견해를 표했다. 패널들은 코로나19가 북한 내 인도주의적 활동에 미친 여파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5월과 10월에 걸쳐 유엔 기구와 NGO 등 11개 단체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해당 단체들은 북한의 국경 봉쇄와 여행 금지 조치로 인해 인력과 운용 능력이 현저히 감소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몇몇 단체들은 (인도적 지원)이행 및 모니터링 노력을 모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많은 경우에 인도적 지원이 더이상 이를 필요로 하는 북한 주민들(target populations)에게 닿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패널 보고서 #"노동당 우선시 지역에만 지원 수용" #정부는 "인도적 지원 해야 北 인권 개선" #"제재로 일반 주민 생활에 악영향" 지적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례 보고서. 북한이 인도적 지원도 정치화했다는 우려를 담은 회원국의 견해를 소개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례 보고서. 북한이 인도적 지원도 정치화했다는 우려를 담은 회원국의 견해를 소개했다.

보고서가 소개한 이같은 상황들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북한 인권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과 다소 모순된 측면이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 사업이 선행돼야 된다고 판단한다. 이런 측면에서 주변국들과 긴밀히 협의하도록 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앞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15일 통일부에 항의 방문한 야당 의원들에게 “평화와 인도주의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더 실질적으로 북한인권을 증진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지원해도 北 주민에 닿지 않는다면…

하지만 보고서에 지적된 내용대로라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중에도 북한 정권은 인도적 지원을 정권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인도적 지원 자체를 이념을 기준으로 선별적으로 받을 뿐더러, 지원이 이뤄져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북한 주민들에게는 쓰이지 않고 김정은 체제의 필요에 따라 전용될 수 있는 셈이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례 보고서 표지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례 보고서 표지

이에 대해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바이든 행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을 반인륜적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점인데, 한국 정부가 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인도적 지원을 늘려야 인권이 개선된다’고 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북한이 인도적 지원마저도 정권의 안정성을 꾀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활용한다면, 인도주의적 지원을 강조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더욱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정권은 자력갱생이라는 목표 하에 외부의 일방적인 인도적 지원은 거부하되 국가대 국가 차원의 교류·협력만 수용하고 있다”며 “교류협력은 상호 간의 이익이 부합해야 이뤄지는 만큼, 그런 틀 내에서 이뤄지는 북한에 대한 유·무형의 지원은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안보리, 인도적 지원 적정성 해결해야”

보고서는 “정량 평가는 할 수 없지만, 제재로 인해 북한 일반 주민에 의도치 않은 영향이 미쳤을 수 있다”며 관련한 다른 두 회원국의 입장도 소개했다. 이들은 “분야별 제재로 인해 약 2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해외 노동자 송환으로 인한 소득 감소와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도 이뤄졌다. 연료 수입 제한으로 에너지 안보, 전력 수급, 민간 운송과 농업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에 따라 패널은 안보리에 “제재로 인해 북한 일반 주민에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역효과를 경감하는 문제, 대북 인도적 지원이 코로나 19 여파 극복과 북한의 취약 계층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권고했다.
유지혜ㆍ정진우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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