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장잔액 30만원 까냐" 9급공무원, 재산공개 분노 폭발

중앙일보

입력 2021.03.30 14:46

업데이트 2021.03.30 17:37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논란에 대한 대책으로 공직자 재산 등록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9급 공무원과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공직자 재산 등록범위를 하위직인 9급까지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으면서다. 9급 공무원과 공시생들은 30일 인터넷에서 “어떤 실효성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9급 공시생 “내 통장 30만원 공개할 거냐”

지난 29일 공무원 시험 준비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커뮤니티 캡쳐

지난 29일 공무원 시험 준비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커뮤니티 캡쳐

재산공개 확대 방안은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을 20여일 남겨둔 공시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한 대형 공무원 준비생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재산공개 확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28일 발표 이후로 관련 글은 900여개가 넘었다. 공무원 준비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면 이해가 가지만, 흙수저가 대부분인 9급을 공개하다니 말이 안 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커뮤니티에 절절한 사연과 분노의 글이 올라왔다. “똥은 LH가 싸고 왜 최저시급 받는 9급을 문제 삼느냐” “시험 며칠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의욕 떨어진다. 내 통장에 30만원 있는데 그걸 공개할 거냐” “우리 집에 빚 10억 있는데 이거 공개되면 결혼 못 한다” 등의 성토가 이어졌다.

“여론 안 좋으니 말단 공무원 잡는 것”

2019년 7일 오전 9급 공무원 필기시험장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수험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번 9급 국가직 공무원은 4천953명을 선발하는데 20만2천여명이 지원해 4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2019년 7일 오전 9급 공무원 필기시험장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수험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번 9급 국가직 공무원은 4천953명을 선발하는데 20만2천여명이 지원해 4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행정력 낭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5년 차 9급 공무원 한모(30)씨는 “9급까지 신경 쓰다가 정작 중요한 고위공직자들 관리가 소홀해질까 걱정된다”며 “9급 공무원이 박봉에 돈 없는 건 당연하지만, 괜히 가난한 것 들킬까 봐 부끄럽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3년 차 9급 공무원 장모(29)씨는 “동사무소에서 9급으로 일하면서 어떤 이익을 얻을만한 정보에는 접근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이어 “여론이 안 좋으니 만만한 말단 공무원들까지 잡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직장에서도 9급 재산공개 확대에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장씨는 “투기를 한다 해도 본인 이름이나 직계가족을 걸진 않을 텐데 재산 등록범위 확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직장에서도 과장급들은 막내들에게 ‘호구 잡혔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공무원 준비생은 “서울시장 선거만 어떻게든 넘기려고 무리수 두는 거 아니냐. 이것 때문에 20대표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밖에도 “공무원 준비생, 공무원들의 표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냐” “중도였는데 재산공개 발표 이후로 보수로 돌아섰다” 등의 불만이 제기됐다.

가족 개인정보 활용동의서 제출 거부하기도

정부 공직자 재산공개 . 사진 인사혁신처

정부 공직자 재산공개 . 사진 인사혁신처

최근 정부가 경기도 공무원의 ‘땅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공직 사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수조사하기 위해 개인정보 활용동의서를 대부분 공무원으로부터 제출받고 있지만,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도청 현직 공무원 6053명 중 5752명(95%)이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했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4391명 중 4045명(92%)이 동의한 상황이다. 하지만, 가족 전원에 대한 동의서 제출을 거부한 이는 각각 8명, 11명이었다.

대구공무원노동조합(이하 대공노)은 29일 성명을 통해 "(모든 공무원 재산등록 의무화는) 새내기 공무원에게 범죄집단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라며 "대공노는 정부의 막무가내식 정책에 분노한다. 재산등록 의무화를 즉시 중단하고 하루속히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최연수·정진호 기자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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