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반도체단지 도면 못 본 사람이 바보, 공무원이 들고다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5리에 토지수용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채혜선 기자

2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5리에 토지수용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채혜선 기자

“요새 뉴스 보면 마음이 착잡하죠. 우리는 몇 대째 살아온 터전을 잃게 생겼는데, 투기꾼들이 난장판을 만들었으니…”
25일 오후 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동네에 새로 지은 전원주택은 개발을 알고 미리 들어온 투기 세력이라고 보면 된다”며 “워낙 말 많던 곳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세력 중에 공무원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있다는 말에 더 허탈했다”고 말했다.

SK 단지 들어서는 원삼면 가보니 #주민들 “열람 공고 전에 정보 다 새 #공무원 투기 의심 밭에 묘목 빼곡 #이제 와서 투기조사 난리치니 분노”

“공무원이 사업 도면 보여줬었다”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도체클러스터 사업단지가 들어서는 용인시 원삼면 일대. 채혜선 기자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도체클러스터 사업단지가 들어서는 용인시 원삼면 일대. 채혜선 기자

이 동네는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곳이다. 2019년 3월 29일 원삼면이 사업예정지라고 공람 되기 전인 2016년부터 토지이용계획 등이 담긴 도면이 부동산업계 등 시중에서 나돌았다고 한다. 사업 확정 후 묻혀가던 반도체클러스터 사전 정보 유출 의혹은 최근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맞물려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60대 주민 김모씨는 “공람 몇 년 전부터 도면이 부동산에 떡 하니 붙어있었다. 땅에 관심 있었던 사람이라면 정보를 사전에 다 알았다고 보면 된다. 못 본 사람이 바보였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당시 용인시에 항의했었지만,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인제야 전수조사한다고 하니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주민 공람공고 전에 사업 도면을 봤다는 이도 있었다. 50대 주민 A씨는 “이 일대를 잘 아는 공무원이 공람 전에 원삼면이 잘 될 거라며 도면을 보여준 적 있었다”며 “그때는 그게 뭔 소리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반도체클러스터 도면이었다. 알 사람은 다 알았던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전 공무원 용인 땅투기 의혹

경기도 전 공무원 용인 땅투기 의혹

“개발지 바깥은 땅값 5배 급등” 

15일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부지 인근 곳곳에 개발 취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모습. 뉴시스

15일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부지 인근 곳곳에 개발 취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모습. 뉴시스

원삼면에는 ‘SK ○○부동산’처럼 상호에 ‘SK’가 들어가는 부동산이 곳곳에 있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클러스터 부지에 약 1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원삼면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진짜 고수는 개발지 바깥을 사지 않나. 원삼면 주변 땅값이 5배 이상 뛰었다.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고 수용당하는 원주민만 손해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서는 토지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날 마을에서는 “강제수용 강제수탈 토지주는 피눈물!” 등과 같은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주민은 “주민 공람 한 달 전에 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내부 정보가 샜다는 뜻”이라며 “고향이 사라지게 된 사람이 무슨 돈을 바라겠나. 그런 의혹부터 명쾌하게 해소됐으면 한다. 투기 세력이 다 휩쓸고 간 마당에 원주민만 피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향나무 묘목만 빼곡…뿔난 주민들 

원삼주민통합대책위가 용인시 소속 공무원의 투기 정황이 의심된다고 주장한 토지에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원삼주민통합대책위가 용인시 소속 공무원의 투기 정황이 의심된다고 주장한 토지에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 18일 원삼면주민통합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017~2019년 원삼면 일대 토지 거래 가운데 30건은 LH 직원, 20건은 용인시청 공무원과 사업 시행사 측 직원 거래로 의심된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용인시 공무원의 투기 정황이 의심된다고 주장하는 한 필지(밭)에는 30∼40㎝ 크기의 어린 향나무 묘목 250여 그루가 심겨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책위는 반도체클러스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토지 보상을 위한 지장물 조사를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투기 정황이 있는 사업이라면 피수용민의 재산 가치가 유린당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공무원뿐 아니라 SK 측 직원 등으로 투기조사 범위를 넓혀 더 많은 투기 세력을 잡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