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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스타벅스에 자주 간다고 단골 손님으로 생각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90)  

동네에 단골 식당과 카페가 몇 곳 있다. 자주 가니 주인이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더는 친해질 구실도 없고 날씨나 계절 이야기 빼면 계산대 앞에서 짧은 시간에 할 말도 별로 없다.

이 정도가 단골일까? 단골의 기준도 모호하고 내가 단골이라 생각해도 주인이 나를 단골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말에서 묻어나는 추억 때문에 단골 가게를 갖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정말 요즘도 단골이라는 말이 살아있을까. 텔레비전에 가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곳이 이발관이다. 낡은 간판, 타일 붙인 세면대, 수동 바리깡, 노년의 주인 이발사…. 그리고 ‘50년 단골손님’이 등장한다. 이 정도면 손님보다는 젊음을 함께 한 친구일 것 같다. 그런 장면 말고는 단골 개념이 머릿속에 가물가물하다.

가끔 텔레비전에 오래된 이발관이 나올 때가 있다. 연륜 있는 이발사 주인과 수십 년 단골손님이 등장한다. 단골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면 아닐까 싶다. [사진 박헌정]

가끔 텔레비전에 오래된 이발관이 나올 때가 있다. 연륜 있는 이발사 주인과 수십 년 단골손님이 등장한다. 단골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면 아닐까 싶다. [사진 박헌정]

요즘 단골 관계를 찾기 힘든 이유를 생각해본다. 내가 꼬마였던 70년대 초, 시골은 물론이고 서울 외곽 동네에도 뭐든 하나씩 있었다. 우리 집은 서울 안암동 용문고 아래쪽이었는데, 구멍가게만 서울상회와 사천상회 두 곳이었지. 이발관, 목욕탕, 약국, 중국집 같은 게 전부 하나씩이라 한 집이 문 닫으면 돈암동이나 보문동 같은 이웃 지역으로 넘어가야 했다.

가게 주인은 손님 없는 낮에는 문 열어놓고 거리를 쳐다보는 게 일이다. 그러니 동네 사람 대부분을 알고, 신용카드가 없으니 얼굴 아는 이웃에게 외상은 불가피하다. 양쪽 관계가 틀어지는 일만 없다면 지속적인 단골 관계가 유지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비스 공급이 넘쳐난다. 집 주변에 카페와 미용실이 수십 곳이고, 회사 문을 나서면 갈 수 있는 술집과 식당이 수백 곳이다. 게다가 차가 있으니 동네 주민이 전부 자기 손님도 아니다. 판매자에게는 경쟁이, 구매자에게는 선택이 생겼다.

선택은 의리보다 변심을 조장한다. 새로 생긴 식당이 맛있으면 처음에는 열심히 찾아가 “잘 먹었습니다. 자주 들를게요”하고 말하지만 이내 그 맛에 질리니 그저 인사일 뿐, 지켜지기 힘들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필요한 생활 시설이 하나씩이라 자연스레 단골 관계가 유지되었다. 매번 가던 중국집이나 약국이 문 닫으면 다른 동네까지 한참 다녀와야 했고, 엄마 심부름으로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기도 쉬웠다. 가시는 곳이 늘 뻔했으니까.

예전에는 마을마다 필요한 생활 시설이 하나씩이라 자연스레 단골 관계가 유지되었다. 매번 가던 중국집이나 약국이 문 닫으면 다른 동네까지 한참 다녀와야 했고, 엄마 심부름으로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기도 쉬웠다. 가시는 곳이 늘 뻔했으니까.

예전에 단골을 이어주던 힘은 옛날 이발관처럼 세월 또는 지역 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편의성’일 것 같다.

회사 다닐 때 사장은 거의 매일 저녁에 임직원들과 간담회 비슷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음식보다 대화가 목적이니 비서실장인 나로서는 새로운 곳을 찾기보다 음식의 질과 분위기가 검증된 몇몇 식당만 집중적으로 선택했다. 업주와 베테랑 종업원이 자리의 성격에 적합한 분위기나 서비스를 제공해 행사에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들 간에도 새로운 곳을 정하기 귀찮아 처음에 모였던 곳이 정기모임 장소로 고정되기도 하고, 몇 번 가본 미용실에서 내 스타일을 잘 파악해 별다른 설명 없어도 알아서 예쁘게 해주니 단골이 되기도 한다. 고객으로서는 편하니까 간다.

물론 업주로서도 돈이 되니까 반갑다. 사장과 함께 매상 올려줄 때는 그렇게 고마워하던 업주였는데, 은퇴 후 사장과 가끔 그 ‘추억의 장소’에 가서 식사하면 예전의 그 반가움은 얼굴 표면에만 살짝 머무는 것 같았다.

회사 뒤편에 일식집이 두 곳 있었다. 한 곳은 늘 예약이 넘쳤고, 다른 곳은 좀 한산해서 갑자기 식사 대접이 필요할 때 요긴했다. 한동안 자주 이용하다가 몇 주 만에 갔더니 주인이 “아니, 요즘 왜 이렇게 뜸하셨어요?” 하는데, 마치 내게 배신당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니 업주에게도 늘 오는 손님은 고정매출일 뿐, 단골손님은 옛말이 된 것 같다.

단골은 서로의 삶 속에서, 서로의 삶을 위해 정과 인심을 끼워 넣고 유지되던 관계였다. 그러나 삶이 생존이란 단어로 바뀌었고, 살가운 정보다 편리함과 정확성이 더 중요해졌고, ‘외상’은 전통적으로 단골손님의 특권이었지만 이제 지불수단이 너무 많다.

사라진 단골 관계의 빈자리를 파고든 것은 ‘충성고객’ 개념이다. 이익 기여도에 따라 고객 등급을 나눠 대접을 달리하는 것을 놓고 예전의 단골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진 IBK기업은행 홈페이지]

사라진 단골 관계의 빈자리를 파고든 것은 ‘충성고객’ 개념이다. 이익 기여도에 따라 고객 등급을 나눠 대접을 달리하는 것을 놓고 예전의 단골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진 IBK기업은행 홈페이지]

따라서 단골 개념은 점점 소멸하는 중이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 아무리 자주 가도 자기 스스로 단골손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충성고객’ 개념 같다. 대상을 정해 등급을 나누고 마일리지, 적립금, 리워드처럼 보상을 계량화한다. 그런데 ‘○○등급’ 고객이 되어도 단골로서 우대받는 느낌은 별로 없다. 오히려 핸드폰 번호이동처럼 경쟁사에서 넘어오는 고객에게는 혜택을 몰아주고, ‘이미 잡은 물고기’에게는 별다른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을 보면 고객은 그들 사이에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영토일 뿐이다.

물론 나도 여러 개의 신용카드, ○○페이, 온라인몰 등을 비교하며 혜택만 빼먹으려 하고 포인트도 열심히 챙긴다. 이미 나 같은 사람까지 계산에 넣어 설계해놓았을 것이다. 이렇게 공급자와 소비자가 치열한 수 싸움 벌이는 시대에 단골이란 말부터가 참 생뚱맞다. 세상이 변하는 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중학교 상업시간 때 단골 관계는 안 좋은 것이며, 경쟁입찰을 통해 싸게 구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어른들의 세상은 그렇구나’하고 깨달았다. 비교, 경쟁, 흥정은 처음 갖게 된 경제관념이었다.

다 같이 먹고살기 위해 삶의 경험으로 그어놓은 ‘적정이윤’의 선은 이제 어린 시절 추억이나 드라마 전원일기의 쌍봉 댁 가게에서나 희미하게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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