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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노인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88)

어제 경북 상주에 다녀왔다. 목적지까지는 200㎞ 남짓, 두 시간 반 거리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하루가 거의 지나갔다. 모처럼 고속도로를 달려서인지 왕복 다섯 시간 운전에도 약간 피곤했다. 운전 중에 ‘다음번에는 전기차를 사야 하나? 완전한 자율주행차 시대는 언제 올까?’ 같은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몇 살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로 생각이 번졌다.

운전경력 32년, 지금껏 운전이 어렵던 적은 없었고 속도 욕심도 잦아들어 안전하게 다니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서서히 운전능력이 감퇴할 것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운전할 수 있는 기간이 20여 년 남았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염려가 커지고 있다. 65세 이상 면허소지자 비율이 2008년 4.2%에서 2018년 9.5%로 늘었고, 치사율도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높다. 1가구 1자동차의 분위기가 형성된 80년대 말부터 30~40대는 여유가 생기면 차부터 샀다. 마이카 시대의 도래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들은 70세를, 뒷자리에 앉아 놀던 자녀들은 40세를 넘어간다. 그러니 운전자 고령화는 우리 사회가 처음 맞는 문제다.

운전 능력을 거의 상실한 고령 운전자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캠페인같은 보여주기식 정책보다는 실질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운전 능력을 거의 상실한 고령 운전자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캠페인같은 보여주기식 정책보다는 실질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사진 pixabay]

고령자 운전이 불안한 건 사실이다. 어제는 편도 1차로에서 시속 20㎞로 주행하는 차를 수백m 따라가야 했고, 며칠 전에는 길을 걷다가 할머니 운전자가 성급히 우회전하는 바람에 부딪힐 뻔했다. 어느 봄날엔 신호가 바뀌었는데 택시가 출발하지 않아 80대로 보이는 기사를 깨운 적도 있다.

이처럼 위험이 큰데, 해법은 “어르신, 이제 운전 그만 하세요”하는 설득뿐이다.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지원제도’가 있다. 70세(일부 지역은 65세) 이상인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10만 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나 지역 상품권을 준다.

그런데 과연 그걸 받고 면허를 반납할까? 30년 전 면허시험장의 긴 대기 줄에서 아저씨·아주머니들의 응시원서를 보면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뒷면까지 수입인지를 빽빽이 붙인 장수생도 많았다. 고생은 물론이고 그 비용만 해도 꽤 되었을 텐데 본전 생각나지 않을까?

농사를 지으시는 장인어른은 몇 년 전 폐차하고 운전을 그만두셨다가 너무 불편해서 다시 경차를 사서 경운기처럼 시골길에서만 살살 몰고 다니신다. 그러니 노인이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근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생업으로 운전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 노인은 이동수단이 필요해 운전한다.

노년에는 근거리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지만, 그래도 가끔은 멀리 가거나 기동력 있게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으니 차라도 있어야 마트나 은행에 수월하게 다닐 수 있고, 큰 병원 갈 일도 잦다. 황혼 육아를 떠맡으면 아이 때문에라도 차가 필요하다. 그나마 대도시에는 안전성과 정시성이 보장된 지하철이 있지만, 지방의 대중교통체계는 미약하다. 지자체가 교통 소외지역 중심으로 ‘100원 택시’ 등을 도입하며 애써보지만, 노인 이동을 전부 감당할 수는 없다.

결국 운전을 포기하면 다른 지역 친지를 방문하거나 경조사 등 장거리 여행 때마다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지방과 지방을 대중교통으로 다니려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지 아는가. 웬만한 대도시끼리가 아니면 열차나 버스 노선이 없고, 있더라도 배차 간격이 길고, 터미널에서의 연결 교통편도 드물어 택시를 타면 기본이 1만~2만원이다.

고령 운전자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이 아직 충분히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젊다고 생각한다. 바깥에서 보는 시각과 차이가 큰 만큼, 개인의 욕심을 자제하는 데 따른 적절한 보상과 설득이 중요하다. [사진 pxhere]

고령 운전자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이 아직 충분히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젊다고 생각한다. 바깥에서 보는 시각과 차이가 큰 만큼, 개인의 욕심을 자제하는 데 따른 적절한 보상과 설득이 중요하다. [사진 pxhere]

이처럼 시간과 비용이 엄청난데 일회성 교통비 지원을 명분으로 면허를 회수하겠다는 정책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이미 상당수가 반납했다고 홍보하는데, 10만 원짜리 교통카드 한장에 미련 없이 면허를 반납했다면 그건 대부분 교통사고 예방목적과는 무관한 비운전자의 장롱면허 아닐까 싶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고, 운전이 주는 편의성을 너무 잘 아는데 면허를 반납하기 쉬울까. 사회를 위한 양보가 내 손해로 돌아온다면 선뜻 움직이기 쉽지 않다. 그러니 권리를 포기하는 가치에 상응하는 확실하고 정당한 보상, 또는 사례가 필요하다.

‘1인당 한 달에 얼마짜리 택시 쿠폰 몇 매’처럼 지속성이 있다든가, 대중교통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교통 마일리지를 지급한다든지, 아니면 교통위반 또는 사고 시 적절한 위로금을 제시하며 면허반납을 설득한다면 실제 위험군을 선별하는 효과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회성 교통카드에는 효율성도 성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돈으로 자전거를 한 대씩 선물하며 “운동하시면서 건강 잘 챙기세요” 하면 정감이라도 느낄 것 같다. 물론 경제부총리 말처럼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니 비용 대비 효익을 따져봐야 한다.

운전 능력을 거의 상실한 고령 운전자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 시간에도 각계 전문가가 많이 연구하고 있겠지만 지금 같은 캠페인보다 더 실질적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노인에 대한 혐오나 구박하는 분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를 눈치 주면서 건강한 노인의 자가운전에 시비 건다면 그건 분명 차별과 배척이다. 누구든 고령 운전자가 된다. 그러니 이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설계하는 일이고, 그 바탕은 노인의 이동 권리를 존중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 시스템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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