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결의안' 초안 제출…美 등 43국 공동제안, 韓 "참여 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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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이사회에 ‘북한 인권 결의안’ 초안이 제출된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3년 연속 북한 인권 결의안 불참? #미국은 3년 만에 공동제안국 복귀 #'남북 대화' 지키려다 '인권 외면국' 우려

1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 일단 한국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은 2009년부터 10년간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9년부터 ‘한반도 정세’를 이유로 빠졌다.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자니 남북관계 교착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고, 3년 연속으로 빠지자니 '인권 외면국'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커지면서다. 특히 올해는 인권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등장이란 변수도 생겼다.

최종건 "북한 인권 우려", 결의안 참여는 미정 

한국은 11일(현지시간)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 인권 결의안 초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해당 결의안 초안엔 미국을 포함 43개국이 참여했다. 사진은 2019년 유엔총해 산하 인권담당 제3위원회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 11일(현지시간)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 인권 결의안 초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해당 결의안 초안엔 미국을 포함 43개국이 참여했다. 사진은 2019년 유엔총해 산하 인권담당 제3위원회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모습. [연합뉴스]

초안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해도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는 오는 23일까지는 언제든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할 기회가 열려 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달 24일 화상으로 진행된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 기조연설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상황에 깊은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 것은 올해 결의안 참여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포르투갈이 EU를 대표해 제출한 해당 초안에는 미국을 포함해 일본·호주·영국 등 43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결의안 초안에는 “북한에서 오랜 시간 자행됐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또 국제형법재판소(IOC) 회부와 추가 제재 등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있다.

3년 연속 '인권 외면국' 오명 쓰나 

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 이모씨(47)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해 10월 '북한 피살 해수부 공무원 추모집회'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 이모씨(47)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해 10월 '북한 피살 해수부 공무원 추모집회'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결의안 초안에서 북한이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국경을 폐쇄하고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은 지난해 9월 북한군이 서해상에서 한국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한 사건과도 무관치 않다. 유엔은 지난해 9월 이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우려를 표했고, 마크 캐세이어 주제네바 미국대표부 대리대사는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 이사회에서 “국경에서 ‘사살(shoot to kill)’ 명령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에 대해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한국이 결의안 채택 전까지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면 3년 연속 북한 인권 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는 국가가 된다. 이 경우 한국은 ‘북한 인권 외면국’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잔여 임기 동안의 핵심 목표로 설정한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결의안 참여가 남북갈등 국면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현실적인 부담이다.

이번 결의안 초안엔 미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한국의 부담을 가중하는 요소다. 미국은 2018년 6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인권이사회를 탈퇴하며 인권 결의안 역시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인권이사회 복귀를 선언한 데 이어 북한 인권 결의에 대한 지지를 촉구했다. 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0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공석이었던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를 다시 지명해야 한다는 요구에 “적극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오는 17일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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