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코로나 봉쇄’ 1년, 머나먼 워싱턴의 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일단 닫으라니까 닫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해 3월 15일 집 근처 음식점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매니저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날 낮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긴급하지 않은 모든 외출을 삼가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워싱턴DC 당국은 다음날부터 모든 음식점과 바에서 실내 식사를 금지했다. 슈퍼마켓 외 모든 소매점과 영화관, 운동시설은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 사무직은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학교는 등교 수업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1년이 됐지만, 워싱턴은 달라진 게 없다. 최근 음식점 실내 식사가 허용됐지만, 재개장하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 임시 휴업한 음식점 가운데 60%가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조사도 나왔다. 문을 연 곳도 텅 비었다. 공무원, 기업인 등 주 고객이 여전히 출근하지 않고 있고, 콘퍼런스 등 오프라인 행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대낮에도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기 어렵다. 대신 노숙자와 걸인은 부쩍 늘었다. 도시 전체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평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 거리가 텅 비었다.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AP=연합뉴스]

평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 거리가 텅 비었다.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AP=연합뉴스]

그동안 미국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대표적인 게 마스크 착용이다. 감염병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도 처음엔 헷갈렸다. 지난해 3월 8일 CBS ‘60분’ 인터뷰에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마스크를 쓰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비말을 막아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한 보호를 해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한 때 마트에서 산 물건을 모두 알코올로 소독했다. 이젠 표면 접촉을 통한 감염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도 나온다. 신종 질병이 불시에 닥치니 과학 강국 미국도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미국은 백신을 가장 먼저 내놓으면서 불명예를 회복했다. 정부가 ‘될성부른 떡잎’ 제약회사 6곳을 선정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나오지도 않은 백신을 선구매해줬다. 개발에 실패해도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애초에 경쟁력 있는 제약·바이오산업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미국 인구의 8.6%, 2900만 명이 감염됐다. 이젠 주위에도 확진자가 적지 않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움츠러든다. 백신 생산과 배송이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언제 일상을 찾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예측치를 점점 늦춘다. 2월엔 성탄절쯤이라고 하더니 3월엔 “내년 이맘때쯤”이라고 했다. 백신을 맞을 수 있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며 버텨보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