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로벌 아이

“여기는 화성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16 00:13

업데이트 2021.03.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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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오토바이가 지나갔는데 몇 초만 지나면 보이지 않는다.” 2014년 JTBC 앵커가 ‘베이징의 공기 상황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당시 베이징 특파원이 한 답변이다. 중국의 미세먼지는 악명 높다. 베이징으로 발령받은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공기가 나빠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8년 연수차 베이징에 온 이래 지난 3년간 베이징의 공기는 예상만큼 나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는 발표를 쏟아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려할 만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주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기간, 초미세먼지 수치는 300㎛/㎥를 오르내리며 베이징을 회색으로 뒤덮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 기간엔 깨끗한 하늘만 보인다는 ‘양회 블루’는 옛말이 됐다.

지난 11일 취재차 자금성 뒤 경산공원에 올랐다. 경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자금성 출구가 전부였다. 스모그가 베이징을 집어삼켰다. 30여 분 정도 지났을까. 휴대폰 액정엔 뽀얀 먼지가 쌓였다. 난간을 휴지로 닦자 시커먼 먼지가 묻어나왔다. 옆에 서있던 관광객의 마른기침 소리도 들렸다. 이날 종합 대기질 수치는 313을 기록했다. 시민들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날씨가 어떠냐는 질문에 “전엔 500까지 올라갔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아이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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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질 ‘500’을 며칠 만에 겪게될 줄 몰랐다. 15일 지독한 황사가 닥쳤다. 국영 CCTV는 “10년 내 최대 규모”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이날 베이징 대기질 종합 수는 최대값 500을 찍었고, 중국환경감시국이 베이징 중심부에서 측정해 공개한 ‘PM 10’ 측정값은 무려 9753㎛/㎥였다. WHO 권고 기준 50㎛/㎥의 200배에 달했다.

체감 정도는 이렇다. 창문을 모두 닫은 사무실 안에서도 흙먼지 냄새가 난다. 밖에 나가면 코는 금방이라도 재채기를 할 듯 간질간질하다.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맞나 싶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누렇다 못해 불그스름하다. 가래를 끌어올려도 목은 계속 잠긴다.

미세먼지에 익숙한 중국인들의 눈에도 상황은 전례없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오늘 나는 화성에서 일한다”, “이런 미세먼지를 먹어야 하다니 우리가 공기정화 식물이냐”, “눈을 떴는데 밖을 보니 아직 꿈 속에 있는 것 같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미세먼지 관련 중국 생태환경부는 양회 기간 정부 지시를 따르지 않고 철강·금속 공장을 가동한 업체들을 적발했다. 코로나19의 위협이 줄어드니 오염물 공장들까지 다시 활개를 치는걸까. 이래저래 마스크는 못 벗게 됐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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