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W "전단법, 아무 물품이나 금지 가능" 통일부에 의견서 접수

중앙일보

입력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HRW)가 통일부가 마련한 대북전단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 해석지침에 대해 “어떤 물품이든 금지품목으로 정할 수 있을 만큼 규정이 모호하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는 15일 통일부에 보낸 의견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휴먼 라이트 워치 웹사이트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는 15일 통일부에 보낸 의견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휴먼 라이트 워치 웹사이트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HRW는 18일(현지시간) 웹사이트에 지난 15일 통일부에 접수한 의견서의 내용을 공개했다. HRW는 우선 “시민ㆍ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CCPR)에 따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며, 정부가 법률로써 이를 제한할 때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보 위한 자유 제약, 국가 전체 위험할 때만  

또 유엔 고문 특별조사관을 지낸 인권 전문가 맨프레드 노왁이 해설서에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국가 전체가 심각한 정치적 혹은 군사적 위협에 처했을 때만 허용된다”며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제한은 잠재적으로 표현의 자유 전체를 저해할 수 있으므로 특히 엄격한 조건이 규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점을 소개했다.
이에 따라 HRW는 전단금지법 해석지침이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북한에 보낼 경우 처벌하는 금지 물품에 대한 법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법은 ‘전단 등’의 살포를 금지하며 “‘전단 등’이라 함은 전단, 물품(광고선전물ㆍ인쇄물ㆍ보조기억장치 등을 포함),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HRW는 ‘등’이라는 표현에 광범위한 물품이 포함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재산상 이익이라는 규정에 대해 “어떤 물품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판문점 선언 합의 범위도 벗어나”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처벌 규정도 지나치다고 HRW는 우려했다. 민사상 조치나 행정적 조치 대신 상대적으로 과중한 형벌적 조치를 부과하려는 이유도 법에는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무효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무효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HRW는 또 정부가 근거로 든 판문점 선언에 대해서도 “남북이 합의한 것은 확성기 방송과 군사분계선 주변 지역에서의 전단 살포 중단 뿐인데 법은 이를 넘어서는 범위의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적었다.
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국내외적 비판이 거세자 통일부는 최근 해석지침을 마련해 공개했다. 제3국에서 전단을 살포하는 행위는 전단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작 ‘전단 등’을 구체화한 내용은 없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어떤 행위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오는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 위반 우려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석을 내놓지 않은 셈이다.

해석지침, 정작 ‘전단 등’ 설명은 없어

정부는 ‘국민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만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약하는 것이고, 따라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3일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초청 간담회에서 “이 법은 시행령이 없는 너무 명확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통일부가 2월 중으로 일종의 내규에 해당하는 해석 지침까지 만들 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이 워낙 명확해서 시행령조차 필요 없을 정도인데, 자꾸 오해를 하니 해석지침을 만드는 것이라는 식이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국민 안전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 즉 금지할지 말지를 전적으로 정부가 판단하는 이상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가 애초에 표현의 자유 제약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큰 문제의식 없이 남북관계 개선만 우선시해 입법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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