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이재명 속도전 겨냥…"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방역이 먼저인 걸로 정리했다. 돈을 푸는 건 2월 말은 돼야 논의할 거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소속 재선 의원)

“자영업을 포함한 현장 경제가 작년보다 훨씬 안 좋다. 지원이 시급하다.” (이재명 경기지사 측 관계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하는 경기도민 1인당 10만원 재난기본소득이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표 측이 지도부 회의를 거쳐 시기상조론을 전달했지만, 이 지사 측은 여전히 설날 이전 지급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8일 저녁 이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자체의 자율권을 존중하지만, 방역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달라”는 당의 입장을 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는데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둘렀다가 문제가 생길까 조심스럽다”는 취지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당의 의견을 존중하고 방역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집행 시기와 대상, 수단을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이 지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는 정책의 필요성과 예산 우선순위에 대한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적자, 당 내부에선 “경기도가 2월 초 지급을 단행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날 경기도청 안팎에서도 이 지사가 이르면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공식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재명의 속도전 vs 이낙연의 신중론

이 지사의 행보가 빠른 건 권한과 명분이 모두 본인에게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지사는 그간 “국민을 가난과 부채에 내몰고 유지하는 형식적 재정 건전성은 무의미하다”(지난 12일), “경제방역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지난 13일)며 명분을 쌓았다.

경기도의회가 지난 11일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경기도에 공식 제안하면서 절차적으로도 이 지사 본인의 결단만 남은 상황이 됐다. 당 지도부가 “방역 당국과 조율되지 않은 성급한 정책”(지난 13일 김종민 최고위원)이라며 제동을 걸자 “18일까지 당이 입장을 정하라”고 요청하며 승부수를 띄운 것도 이 지사였다.

홍익표 정책위의장(가운데)은 18일 저녁 이재명 경기지사에 전화를 걸어 경기도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밝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왼쪽)의 생각과 맞물려있단 평가다. 오른쪽은 김태년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홍익표 정책위의장(가운데)은 18일 저녁 이재명 경기지사에 전화를 걸어 경기도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밝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왼쪽)의 생각과 맞물려있단 평가다. 오른쪽은 김태년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이런 속도전에 당혹스러운 건 이 대표다. 여론이 서서히 무르익으면 당·정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겠단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정치적 명운이 걸린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극적 효과가 필요한 이 대표 입장에선, 경기도의 움직임이 정부 결정을 앞당길까 경계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일 밤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움직임에 대해 “지금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소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고 사실상 이 지사를 겨냥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중진 의원은 “이 지사가 개인플레이를 하면서 ‘신중히 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초선 의원 역시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이 자신의 브랜드라는 걸 알고 이런 행보를 하는 것”이라며 “당이 쫓기듯 결정하면 부수효과는 결국 이 지사가 누린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그러면서도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와 각을 세우지 않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 “갈등처럼 비치는 것을 잘 정리할 책무가 있다”(지도부 3선 의원)라거나 “엇박자가 나거나 신경전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정책위 핵심관계자)고 밝히는 식이다.

“1차 재난지원금처럼 불쏘시개 될 것”

경기도가 전 도민에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다른 지역에서 “정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집행하라”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그랬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당·정은 소득 하위 50~70%에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 했다. 하지만 경기도와 강원도를 포함한 지자체가 우후죽순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면서, 결국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가구당 최대 100만원씩 전 국민에 돈을 나눠줘야 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이 지사는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조속히 전 국민에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역시 그런 국가적인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경기지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다만 이 지사의 일방 독주에 대한 당내 견제 심리는 변수로 남아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 지사가 지지율로는 앞서지만, 아직 당 전체로 보면 소수다. 홀로 너무 치고 나가면 예전과 달리 당내에서 직접적인 공격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은 이 지사 측도 모르지 않는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이날 “여느 때보다 이 지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며 “20일쯤 최종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오현석·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