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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은 김수녕처럼 쏘라”는 농구감독 강을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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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강을준 감독은 올 시즌 오리온을 맡아 선두권에 올렸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최하위였다. 선수 기를 살리는 리더십이 통했다. [사진 KBL]

강을준 감독은 올 시즌 오리온을 맡아 선두권에 올렸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최하위였다. 선수 기를 살리는 리더십이 통했다. [사진 KBL]

“양궁 김수녕이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했어. 화살처럼, 슛도 한번 쏘면 손을 떠난 거야.”

소통으로 기 살리는 오리온 감독 #지난 시즌 꼴찌 팀, 단독 2위 올려 #재밌는 농담으로 선수 긴장 풀어줘 #수학용어 사용, ‘수학자’ 별명 얻어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강을준(56) 감독은 최근 가드 한호빈(30)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직접 활 쏘는 시늉까지 하며, 1988년 서울 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48)의 말을 인용했다. 한호빈은 3일 부산 KT전에서 막판 실수를 쏟아내 경기를 망쳤다. 스승은 기죽은 제자를 그렇게 격려했다.

강 감독은 10일 전화인터뷰에서 “미련을 빨리 털어내는 것도 기술이다. 호빈이한테 ‘이제 시즌 반환점을 돌았고, 3라운드나 남았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다음 상황이 압권이었다. 강 감독은 “그런데 호빈이가 김수녕을 모르더라. 세대 차이를 느꼈다”며 웃었다.

강 감독은 코트 안팎에서 재치있는 말을 쏟아내 ‘어록 제조기’로 불린다. 또 다른 별명은 ‘성리학자’다. 창원 LG 사령탑 시절, 작전타임마다 “성리(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경남 마산 출신) 때문에 “승리”를 “성리”처럼 발음했고, 그 후로 ‘성리학자’가 됐다.

‘성리학자’였던 강 감독이 요즘은 ‘수학자’가 됐다. 오리온이 ‘양날의 검’일지 모를 가드 이대성(31)을 영입하며, 강 감독이 농구를 수학에 비유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득점이 더하기, 어시스트가 빼기, 패스가 동료를 거쳐 득점으로 연결되면 나누기’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대성이가 처음에는 더하기만 했다. 올 시즌에는 빼기와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강 감독이 문과(성리학)에서 이과(수학)로 전과했다”며 화제가 됐다.

강 감독은 10일 KT전 4쿼터 작전타임 도중에도 이대성을 향해 “더하기만 하면 안돼”라고 말했다. 강 감독 지시에 따라 이대성은 22점을 올리며 80-76 승리를 이끌었다.

앞서 강 감독은 3일 KT전 4쿼터에 이대성을 뺐다. 곧바로 ‘불화설’이 나왔다. 강 감독은 “화살(팬들의 비판)이 날 관통해서 대성이한테 날아갈까 봐 보호한 거다. 불화설을 듣고서 대성이에게 ‘차라리 너랑 나랑 한판 붙자’고 했다”며 웃었다. 이에 이대성은 “지난해 12월 경기 중 입술이 찢어져 6바늘 꿰맸는데, 감독님 때문에 웃겨서 또 찢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 [사진 KBL]

프로농구 오리온 강을준(왼쪽) 감독과 가드 이대성. [사진 KBL]

시즌 초반 선수 줄부상에 강 감독은 “오늘 작전명은 명량대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물리친 걸 비유한 거였고, 이 말도 화제가 됐다.

강 감독은 가끔 선수단 미팅을 앞두고 야심 차게 ‘말 개그’를 준비한다. 최근 미팅에서 선수단에 “오바하지 말고 잠바해”라고 했다. 노장 허일영(36)만 웃음을 터뜨렸다. 강 감독은 “경상도에서는 코트를 ‘오바’라고 하는데. 요즘 애들은 못 알아듣는다. 꼰대가 안 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웃었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꼴찌였다. 강 감독이 부임하자 9년 만의 현장 복귀를 두고 ‘올드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오리온은 단독 2위(17승 12패)다. 감독의 권위를 내려놓고 선수들을 편하게 해준 덕분이다. 강 감독은 트레이드로 이종현(2m3㎝)을 데려와 ‘오리온 산성’을 구축했다. 기복을 줄이는 게 숙제다.

어록 양산의 비결에 대해 강 감독은 “책을 많이 본다”고 한 뒤 뜸을 들이다가 “만화책”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LG 감독 시절 ‘작탐(작전타임)’ 때 욱해서 큰 소리 낸 적도 있다. 지금은 선수들과 평소 소통해 그런 일은 없다. 내가 현장에 돌아온 뒤로 ‘작탐’을 기다리는 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프로농구연맹은 경기 중 감독, 선수에게 마이크를 채워 현장 목소리를 전한다. 강 감독은 아직 마이크를 찬 적은 없다. 그는 “지난 시즌 순위에 따라 차례로 하면 나도 (마이크를) 차겠다. 흥미가 좀 떨어지는 타이밍이나, 4~5라운드쯤이 좋겠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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