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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150마리 앗아간 수해, 그때 낳은 송아지들이 희망 됐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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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북 남원시 송동면 김종화(60)씨 축사에서 수 송아지가 어미 젖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 남원시 송동면 김종화(60)씨 축사에서 수 송아지가 어미 젖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물난리 때 만삭이던 암소들이 수해 직후 송아지 5마리를 각각 낳았는데 이 중 2마리가 살아남았어요.”

소띠 해 재기의 꿈 키우는 한우 농가 #작년 폭우때 300마리 중 절반 피해 #낙심했던 남원 25년 축산 농가 #물난리 후 암소 3마리 첫 출하 #남해·구례도 송아지 출산 잇따라

전북 남원시 송동면에서 25년간 한우를 키워 온 김종화(60)씨는 7일 “소는 보통 태어난 지 2~3개월 지나면 어미와 분리해 사료를 먹이는데 지난해 가을에 난 놈(송아지)들은 덩치도 작고 성장도 더뎌 일부러 젖을 먹이려고 어미 밑에 붙여 놨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해 8월 폭우 때 물에 떠내려 갔던 어미 소는 구조된 지 2개월 만에 새끼를 낳았다. [연합뉴스]

지난 해 8월 폭우 때 물에 떠내려 갔던 어미 소는 구조된 지 2개월 만에 새끼를 낳았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소 1200마리가량이 폐사하는 등 전국 한우 농가의 피해가 속출했다. 한우 농가들은 당시 물난리로 크고 작은 재산 피해를 봤지만,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를 맞아 수해를 딛고 무럭무럭 자라는 송아지를 보며 재기의 희망을 품고 있다.

당초 김씨는 한우 300마리를 키웠으나 지난해 8월 8일 남원에 4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져 축사가 잠기고 소 150여 마리가 죽거나 유실됐다. 김씨는 “수해 당시 소들이 농가 지붕 위로 피했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일부는 둑방이나 산 위로 올라가 있다가 구조됐다”며 “25일 만에 전남 곡성에서 포획해 온 소도 있다”고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소들 중에서도 다치거나 병든 소는 긴급 도축됐다.

물난리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된 뒤 김씨 농가에서는 그해 9~11월 송아지 5마리가 태어났다. 하지만 이 중 3마리가 한두 달 만에 호흡기 질환 등을 앓다가 잇달아 죽었다. 김씨는 “어미 소들이 수해 때 스트레스를 받고 오염된 물을 먹어서인지 수해 이후 태어난 송아지는 잘 크지 않고 면역력도 약했다”고 전했다. 반면 지난해 10월 태어난 수송아지 1마리와 11월에 태어난 암송아지 1마리는 용케 살아남았다. 이들을 낳은 어미 소 2마리도 무사하다. 김씨는 “살아남은 송아지 2마리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고 했다.

송아지

송아지

그는 “그동안 IMF 외환 위기와 구제역을 겪고도 규모를 수백 마리로 불리고 2녀 1남을 번듯하게 키웠다는 보람이 있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물난리를 겪고 나니 한동안 소를 키울 의욕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몇 달간 축사를 복구하고 소 대부분이 건강을 회복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희소식도 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수해를 입은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지난 5일 암소 3마리를 충북 음성 공판장에 출하했다. 수해 이후 수익이 나는 건 처음”이라며 “소 판 돈으로 올해 (음력) 설을 쇨 계획”이라고 했다.

경남 남해군에도 최근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해 8월 폭우 때 섬진강이 범람해 전남 구례군에서 남해 고현면 남초섬까지 55㎞를 떠밀려 왔다 구조된 소가 지난 5일 암송아지를 낳았다는 소식이다. 구례에 사는 소 주인이 지난 6일 남해군에 “우리 소가 송아지를 출산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탈진한 소를 구조한 남해군은 임신 4개월이던 소에 영양제를 주입하며 극진히 보살핀 뒤 구례 농가에 인계했다.

앞서 구례 양정마을에도 지난 여름 수마가 덮쳐 한우 1600마리 중 700여 마리가 죽었다. 당시 지붕 위로 몸을 피했다가 사흘 만인 지난해 8월 10일 크레인으로 구출된 백모(61)씨 농가의 6살 된 암소가 구조 다음 날 쌍둥이 송아지(원 안 사진)를 순산해 화제가 됐다. 구례군에 따르면 각각 ‘희망이’ ‘소망이’라는 이름을 얻은 송아지 자매는 큰 병 없이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남원·남해·구례=김준희·위성욱·진창일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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